실내에 해변 만들고, 에펠탑에 물길 낸다... 파리의 이색 패션쇼 현장

입력 2018.10.12 10:00

샤넬의 실내 백사장, 생로랑의 에펠탑 물길... 퍼포먼스 누가누가 잘하나
더 크게, 더 파격적으로… 로케이션 전쟁 벌이는 파리 패션쇼

밀라노를 떠나 파리의 오래된 극장에서 펼쳐진 구찌의 쇼는 한 편의 연극 같았다./구찌 제공
이젠 작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전 세계에서 열리는 패션쇼를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다. 디자이너들은 매 시즌 더 화려하고 극적인 쇼를 선보이고 있다. 소셜미디어 시대에도 ‘패션은 판타지’라는 명제는 유효한 까닭이다.

얼마 전 막을 내린 2019년 봄/여름 파리패션위크는에서도 명품 브랜드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세트 공세를 퍼부었다. 쇼가 끝나자마자 인스타그램 피드를 뒤덮은 이색 패션쇼들을 소개한다.

◇ 실내에 백사장과 해변 만든 샤넬
퍼포먼스 하면 칼 라거펠트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샤넬의 2019 봄/여름 패션쇼를 위해 파리 그랑 팔레 전시장을 인공 해변으로 만들었다, 앞서 공항, 슈퍼마켓, 우주정거장 등 상상을 초월하는 세트로 볼거리를 선사했던 샤넬에게 실내 해변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터. 출렁이는 파도와 하얀 모래가 덮인 백사장,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는 인명구조대원까지, 패션쇼장은 평화로운 해변의 모습 그대로였다. 가림막 너머로 보이는 그랑팔레의 지붕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였고, 이는 영화 ‘트루먼 쇼’를 연상시켰다.

모델들은 맨발로 모래사장 위를 경쾌하게 걸었다. 일부 모델은 샌들을 핸드백 대신 들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기도 했다. 샤넬을 대표하는 트위드 의상을 비롯해 실크 원피스, 체인 가방과 밀짚모자, 로고 액세서리 등 경쾌한 리조트 룩이 대거 등장했다. 체인 핸드백 두 개를 크로스백처럼 어깨 양쪽에 착용한 새로운 핸드백 연출법도 눈길을 끌었다.

◇ 에펠탑 앞에 물길을 만든 생로랑
생로랑은 파리 에펠탑 앞에 물길을 만들었다. 오후 8시 에펠탑 전등쇼가 시작되고 정확히 5분 후, 검은 옷을 입은 모델이 에펠탑과 흰색 인공 야자수 나무가 비치는 까맣고 얕은 물길을 첨벙첨벙 걸어 나왔다. 이 모습은 마치 물 위를 걷는 듯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생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소니 바카렐로는 관능적인 로커 룩을 대거 선보였다. 록은 생로랑의 DNA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믹 재거, 데이비드 보위 등 록스타들이 브랜드의 창립자인 이브 생로랑의 옷을 입었고, 2016년까지 4년간 생로랑의 디렉터로 일했던 에디 슬리먼은 아예 록 시크 룩을 주력으로 선보였다. 이번 패션쇼에서도 1960~70년대 록스타를 연상시키는 부풀린 소매 블라우스와 스웨이드 재킷, 미니 원피스 등이 등장했다. 디자이너의 시그니처인 가죽 재킷과 가죽 쇼츠, 보디슈트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였다.

◇ 비디오 터널에 3D 프린팅 의상 등장시킨 발렌시아가
발렌시아가의 혁신가 뎀나 바잘리아는 관객들을 비디오 터널로 초대했다. "항상 누군가의 디지털 정신 속에 있는 것처럼 비디오 터널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는 그의 말대로 둥근 터널의 천장과 벽, 바닥에선 화려한 색상의 그래픽과 글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공상 과학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간 듯 시각적 충격을 안겼다.

뎀나 바잘리아는 우리 주변의 모든 시끄러운 복잡성과 불협화음, 소음과 산만함을 패션쇼의 영감으로 삼았다. 그리고 현대 의상이 무엇이고 그것이 합리적으로 새로운 세대에 이치에 맞는지를 다루는 데 열중했다. 지난 시즌부터 선보인 3D 프린팅 재킷을 시작으로 데님, 오버사이즈 셔츠, 저지 원피스 등이 등장했다. 로고 마니아를 위한 로고 셔츠와 발렌시아가의 유산처럼 보이는 전위적인 드레스도 돋보였다.

◇ 루브르 박물관에 긴 터널 설치한 루이비통
루이비통은 파리 랜드마크인 루브르 박물관 광장에 좁고 긴 터널을 만들었다. 앞서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 아래, 유서 깊은 조각상들 사이에서 패션쇼를 펼쳤던 루이비통은 이번엔 그 위에 유리와 LED 조명으로 만든 미래적인 런웨이를 선보였다. 여행용 트렁크에서 출발한 루이비통에게 ‘여행’은 주요한 철학 중 하나다. 이 런웨이는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떠나는 여행자들을 위한 산책로였다.

◇경마장에서 우아한 ‘춤극’ 선보인 디올
"춤, 춤, 그것이 아니면 우리는 길을 잃는다" "몸은 단어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디올의 패션쇼가 열린 파리 롱샴 경마장 구조물에 춤과 관련한 다양한 인용구가 쓰여졌다. 피나 보슈, 이사도라 던컨 등 현대 무용의 아이콘들이 남긴 문구였다.

디올의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보편적인 언어와 해방 행위 그리고 움직임의 예술로서 현대 무용을 창작의 도구로 활용했다. 심장박동이 두근대는 듯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장미 꽃잎이 흩뿌려지고, 레오타드를 입은 무용수들이 몽환적인 춤사위를 벌였다. 그 사이로 패션은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어우러졌다. 여러 겹의 얇은 옷을 입고 몸을 푸는 무용수에서 착안해 만든 보디슈트와 가벼운 실크 드레스, 발레복을 연상시키는 튀튀 등이 등장했다.

◇ 오래된 극장에서 연극적인 패션쇼 펼친 구찌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브랜드 구찌는 밀라노가 아닌 파리의 오래된 극장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관객이 무대를 지켜보는 수동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무대와 관객의 경계가 허물어진 시도가 한 편의 실험극을 보는 듯했다. 패션쇼는 1970~80년대 디스코장에서 어울릴 법한 반짝이 의상과 미키마우스 모양 가방, 모델의 어깨 위에 얌전히 앉아 있는 앵무새까지 시선을 사로잡는 아이디어로 가득했다.

쇼 중간엔 관객석에서 배우 제인 버킨이 등장해 히트곡 ‘베이비 얼론 바빌론(Baby Alone in Babylone)’을 열창했다. 이는 마치 막과 막 사이 쉬어가는 연극의 인터미션 같았다. 관객석을 돌며 워킹을 마친 84명의 모델은 무대 위로 모여들었고, 마지막 모델까지 자리를 잡고서야 장막이 쳐졌다. 그렇게 파리에서의 구찌 1막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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