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선거 여성후보 사상 최다… 치마 입고 하이힐 신고 '돌풍'

입력 2018.10.12 03:00

연방 상·하원, 주지사, 州의원 등 모두 기록 경신… 4000명 넘어
드러내지 않던 여성성 강조하고 여성 장점, 차별화 전략으로 삼아 도전·변화의 상징으로 평가받아

지난 3일 뉴욕 브롱크스 에이디 애비뉴 노인요양센터에서 주민 토론회가 열렸다.

7명의 연사 중 단연 주목을 받은 인물은 11월 6일 중간선거에 뉴욕 14선거구(브롱코스·퀸즈) 민주당 연방하원 후보로 출마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28)였다. 그는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를 입고 긴 머리를 자연스럽게 풀어헤친 모습으로 단상에 등장했다. 입술에 바른 짙은 빨간색 립스틱도 두드러졌다. 바지 정장에 화장기 없는 수수한 차림 일색이었던 과거 여성 후보들과는 사뭇 달랐다. 예비선거에서 10선(選) 의원을 꺾으며 일약 '신데렐라'로 떠오른 이 무서운 정치 신예는 선거 홍보 영상물 속에서도 거울 앞에서 마스카라를 고치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지하철역을 누비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뉴욕 브롱코스·퀸즈 연방 하원 의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오른쪽)가 지난 5월 뉴욕 엘름허스트의 선거사무소 개소식 행사 도중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뉴욕 브롱코스·퀸즈 연방 하원 의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오른쪽)가 지난 5월 뉴욕 엘름허스트의 선거사무소 개소식 행사 도중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선거사무소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이번 중간선거 '여풍(女風)' 주역 가운데 한 명이다. 10일(현지 시각) LA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다음 달 미국 중간선거에 출마하는 여성 후보가 전 부문에서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주 의회에 도전하는 여성 후보자는 3779명으로, 기존 최다 기록이었던 2016년의 2649명을 크게 추월했다. 연방 상·하원과 주지사 여성 후보 수도 모두 예전 기록을 경신했다. 연방 상원에 도전하는 여성 22명(2012년 기록 18명), 연방 하원 여성 후보 235명(2016년 167명)도 역대 최다 기록이다. 주지사 여성 후보 16명도 1994년 기록(10명)을 훌쩍 넘겼다. 향후 경선 결과에 따라 여성 후보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다. 선거 운동 방식도 확연히 바뀌었다. 과거엔 여성 후보들이 '나도 충분히 강하고 남성스럽다'는 것을 내세우는 데 주력했다면, 이번 중간선거에선 오카시오-코르테스처럼 여성성(性)을 당당히 내세운다. 양적 증가만이 아니라 질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1월 중간선거 분야별 여성 후보 수 및 역대 여성 최다 기록 표

여성 후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성을 내세우고 있다. 버지니아주 10선거구 연방하원(민주당)에 출마한 제니퍼 웩스턴은 홍보 동영상에서 "검사인 나는 낮에는 범죄자들을 집어넣고, 밤에는 엄마로서 아기 기저귀를 갈죠"라며 모성(母性)을 부각시켰다. 결선 진출엔 실패했지만 크리시 비그나자라(38) 예비후보도 모유 수유 장면을 선거 광고로 내보냈다.

미국 메인주(州) 민주당 상·하원 의원을 역임한 에밀리 케인은 이런 변화에 대해 "파도가 치는 게 아니라 바다가 바뀌고 있다"고 했다. 미국 정치 판도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 정치 대폭발'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변화가 왜 이번 중간선거에서 터져나왔을까. LA타임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남과 여'의 구도로 맞붙었던 2016년 대선이 정계 도전을 꿈꾸는 여성 수를 크게 늘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대선 기간 내내 여성 비하 발언을 쏟아냈던 트럼프가 당선된 후 몇 주 사이에 약 1000명의 여성이 여성 정치 지망생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에밀리 리스트'에 등록했다. 2014~2016년 3년간 이 단체에 등록한 여성(920명)에 맞먹는 수치다.

작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불기 시작한 '미투 열풍'도 여성 정치 바람에 한몫했다. '미투' 관련 집회가 잇따라 열린 작년 연말엔 2만5000여 명의 여성이 '에밀리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브렛 캐버노가 성추행 의혹에도 불구하고 대법관으로 임명되면서 여성 정치 지망생 숫자는 다시 늘어나는 분위기다.

2008년 힐러리가 대선에 첫 도전을 했을 때, 컨설턴트인 마크 펜은 "이 나라는 '퍼스트 파더(first father)'를 원한다. 아직 '퍼스트 마마(first Mama)'를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면서 힐러리에게 여성성을 드러내지 말 것을 주문했다.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럿거스대학 미국여성정치센터 켈리 디트마 교수는 VOA에 "이제 여성 후보들도 남자를 따라 하는 데서 벗어나 여성만의 장점을 차별화하는 전략을 내세울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NPR은 "이번 선거에선 오히려 '여성'이라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한다"면서 "지금과 같은 불협화음과 혼돈의 시기에 신진 정치 세력인 '여성'은 도전과 변화의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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