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제주 관함식

입력 2018.10.12 03:16

1949년 8월 16일 인천 앞바다에서 대한민국 첫 관함식(觀艦式)이 열렸다. 정부 수립 1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소해정 9척이 나온 초라한 행사였다. 손원일 해군 참모총장이 이승만 대통령을 안내해 기함(旗艦)에 올랐고 편대 기동훈련이 시작됐다. 함정이 일렬로 항진하면서 실시한 37㎜ 함포 사격이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관함식은 국가원수가 자국 군함의 전투 태세를 점검하는 해상 사열식이다. 1346년 영국왕 에드워드 3세가 템스강 하구에서 프랑스와 벌이는 전쟁에 나가는 함대를 사열한 게 시초라고 한다. 대영제국 절정기인 19세기엔 국력 과시 수단으로 관함식을 이용했다. 요즘에는 여러 나라가 외국 함정까지 초청해 군사 교류와 협력을 다지는 계기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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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영국 남부 포츠머스항에선 '트라팔가르 해전 승리 200주년' 관함식이 열렸다. 32국 함정 168척이 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주재한 이 관함식은 이번 세기 들어 최대 규모였다. 2009년 중국도 해군 창설 60주년을 맞아 산둥성 칭다오에서 최신예 함정과 원자력 잠수함을 선보이며 관함식을 열었다. 그때 우리도 독도함과 강감찬함을 보냈다. 작년 4월 시진핑은 남중국해에서 지금껏 보지 못한 대규모 해상 열병식을 열었는데, '시황제의 해상 대관식'이라고 했다. 해군 국가 전통이 있는 일본에선 관함식 인기가 대단해 입장권이 웃돈을 받고 팔릴 정도라고 한다.

▶어제 제주 해군기지 앞바다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군 수뇌부, 국내외 함정 39척이 참가한 국제 관함식이 열렸다. 모두 12국 19척이 왔다. 이제 우리 해군도 세계적 수준에 가까이 와 있다. 그런데 미 7함대 항모 로널드 레이건함은 다른 함정들과는 달리 관함식 행사가 끝난 뒤에야 제주 기지에 입항했다. 북한 핵·미사일 도발 때마다 한반도 해역으로 출동했던 항공모함이다. 군 당국은 "원래 그럴 계획이었다"고 하지만 해상 반대 시위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는지 찜찜하다. 아직도 제주 기지를 '미국의 침략 기지'라면서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 제주 기지가 없으면 남해 먼바다는 사실상 지킬 수 없다. 제주 기지 건설은 노무현 정부가 결정했는데 민주당은 야당이 되자 반대 시위에 앞장섰다.

▶'욱일기' 게양 논란 끝에 일본 자위대 함정은 오지 않았고, 중국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막판에 불참을 통보했다. 제주 관함식에서 한국 내부 갈등과 동북아 3국의 풀리지 않는 갈등이라는 불청객도 수면 위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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