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외교장관의 '발언'

입력 2018.10.12 03:13

김진명 정치부 기자
김진명 정치부 기자

우리나라 외교장관의 발언에 미국 대통령이 다음 날 즉각 반박하는 모습은 거의 전례가 없다. 우리 외교장관이 한·미 간에 갈등이 있다고 공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 두 가지 '이례적 기록'을 10일 국정감사 하루 만에 모두 세웠다.

"(5·24 조치 해제를) 검토 중"이란 발언은 "우리 승인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대로 이어졌다.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 즈음 평양선언과 남북 군사합의서 내용에 격노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전화로 강한 불만을 표했다는 외교가의 '소문'은 "맞는다"는 강 장관의 한마디로 실체를 인정받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떤 이들은 청와대와 정권 핵심부가 남북 관계나 외교 정책의 중요 결정에서는 강 장관과 외교부를 사실상 배제했다가, '여론 떠보기'를 할 때만 내세우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강 장관의 5·24 조치 해제 검토 발언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문답에서 나온 것이 그렇게 보이도록 한 측면이 있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강 장관이 박병석 민주당 의원의 질의를 받고 사드 추가 배치는 없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답하던 모습이 연상된다는 반응도 있다. 청와대나 여권에 끌려다닌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 장관의 국감 답변을 뜯어보면 이게 꼭 여권(與圈)과 엮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강 장관은 지난 4일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북한 핵무기에 대한 신고 요구를 미루자(hold off)"고 제안했다. 그런데 10일 국감에선 핵 협상 역사에 대한 기본적 질문에도 답하지 못했다. 진영 민주당 의원이 "제네바 합의는 언제 시작했다가 언제 끝났나", "북핵 6자회담은 얼마나 지속했나"라고 물었을 때, 강 장관은 "정확한 햇수는 모른다"고 했다. 비핵화 전문가들이 봤다면 "북한과의 협상 역사도 모르면서 핵 신고를 미루자고 했나"란 말이 나왔을 것이다.

'공부 부족'을 떠나 강 장관이 '대외적 메신저'로서 외교장관이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외교장관의 발언은 국내만이 아니라 세계에 주는 메시지다. 우리가 대북 제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미국도 북한도 다 듣고 있다. 한·미 동맹이 어떤 상태인지 다른 나라들이 주시하고 있다. 그런 점을 확고히 인식하고 있다면 강 장관의 답변은 달라졌어야 한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핵 신고와 제재 유지는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미국의 핵심 정책이다. 입을 열 때마다 동맹 관계를 훼손하면서 어떻게 외교를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강 장관이 취임한 지도 1년 4개월째다. 이제 외교장관의 역할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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