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법 8개월… 2만명 넘게 '웰다잉' 택했다

입력 2018.10.10 03:01

연명의료 중단 빠르게 늘어
본인보다 가족 결정 2배 많아

연명의료 안 하거나 중단한 환자 현황
올해 2월 '존엄사법(연명의료결정법)'이 본격 시행된 지 8개월 만에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미리 거절하거나 도중에 중단한 말기 환자가 2만명을 넘어섰다. 기계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기보다, 통증을 관리하고 존엄성을 지키며 마지막 나날을 보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은 지난 2월부터 이달 3일까지 2만742명이 연명의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9일 밝혔다. 병이 위중해진 뒤 환자가 의료진과 상담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경우가 세 명에 한 명꼴(6836명·33.0%), 환자 대신 가족이 연명치료를 중단한 경우가 세 명에 두 명꼴(1만3752명·66.3%)이었다. 아직은 본인이 정한 경우보다 가족이 정한 경우가 두 배 많았다.

연명의료란 말기 환자와 임종기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만 연장시키는 시술을 가리킨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부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네 가지가 해당된다. 환자의 희망과 병명에 따라 환자 본인이나 가족이 네 가지 시술을 모두 안 하거나 일부만 할 수 있도록 자기 결정권과 선택권을 보장하는 게 존엄사법의 핵심이다.

웰다잉 전문가인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의미 있는 변화지만 우리나라에 존엄사가 자리 잡았다고 하기엔 아직 부족한 숫자"라고 했다. 이 2만명 중 절대다수(99.3%)는 환자가 위중해진 뒤에야 환자 혹은 가족이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했다.

병이 위중해지기 전부터 환자 스스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등록해둔 경우(154명·0.7%)는 1%가 채 안 됐다.

19년 논란 끝에 존엄사법이 국회를 통과한 게 재작년이다. 2년 유예 기간을 거쳐 올 2월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법 만드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그만큼 존엄사법에 논쟁적 요소가 많아서였다.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과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이 상징적이다. 보라매병원 사건은 환자 본인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의료진이 부인의 요구대로 환자를 집에 보내줬다가 다른 친척들에게 고발당한 사건이다.

김 할머니 사건은 자식들이 의식 없는 어머니 대신 "고통만 더하는 연명의료를 중단해달라"고 요구했다가 병원에 거절당한 사건이다. 보라매병원 때는 법원이 의료진을 벌줬지만, 김 할머니 사건 때는 가족 손을 들어줬다.

막상 법이 생긴 뒤 웰다잉은 빠른 속도로 뿌리내리고 있다. 복지부와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은 이날 "존엄사법 시행 후 8개월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서 등록한 사람이 총 5만8845명"이라고 집계했다. 시행 첫 달부터 매달 6000~7000명씩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인구 규모(4231만명)를 감안하면, 병이 위중해지기 전부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둔 사람은 아직도 0.1%에 불과하다. 연명의료 대신 편안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단기간에 그만큼 늘어났다곤 해도, 미리 정해둔 사람은 극소수(2만742명 중 154명·0.7%)고 절대다수(2만588명·99.3%)는 위중해진 뒤에야 시간에 쫓기며 본인 혹은 가족이 죽음의 방식을 결정했다.

웰다잉 전문가들은 "존엄사법 생기는 데 20년 걸렸다는 점, 이제 막 시행했을 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기까지 온 것도 뿌듯하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윤영호 서울의대 교수는 "우리는 아직도 환자나 가족이 연명의료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내야 하는 구조"라면서 "의료진이 임종 단계가 오기 전에 미리 연명의료에 대해 설명하고, 환자의 의사를 기록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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