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공항에서 택시를 타려면 승하차 도우미에게 목적지보다 먼저 동승자 중 아이가 있는지 여부를 말해야 한다. 아이가 있다면 몇 명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자세히 밝혀야 한다. 도우미가 무전기로 근처 택시 기사들에게 이를 전달하면, 해당 아이에게 맞는 카시트를 지닌 기사가 택시 승강장으로 온다.
독일에선 12세 이하, 키 150㎝ 이하의 영·유아가 차량으로 이동할 때, 카시트 착용 후 안전띠를 매야 한다. 택시 호출 앱에선 옵션으로 카시트 선택이 가능하고, 렌터카 업체 한쪽엔 카시트 대여소가 있다. 그래선지 독일의 카시트 착용률은 96%에 달한다.
지난달 28일부터 우리나라도 영·유아 카시트 착용 단속 강화에 나섰다. 6세 미만 영·유아가 차량에 탑승할 경우 카시트를 착용해야 한다는 규정은 1997년 마련됐다. 그러나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규정은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2016년 카시트 미착용 범칙금을 3만원에서 6만원으로 올렸지만, 카시트 장착률이 낮은 상태에서 범칙금만 올렸다는 비난에 직면하며 단속은 또 흐지부지됐다. 경찰청은 이번엔 이를 제대로 잡겠다며 "2개월 계도 기간을 둔 뒤 오는 12월부터 범칙금 6만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부모들이 반대에 나섰다. 시행 전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카시트 의무화 반대 청원 5건이 올라왔고 1000여 명이 동의했다. 자기 차(車)에는 카시트를 설치해도 택시 탈 때는 방법이 없다는 거였다. 우리나라 카시트 장착률은 33.6%인데, 택시 내 카시트 보급률은 0%다. 택시 호출 앱에선 카시트를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런 마당에 단속만 강화하면 아이 있는 집에 대한 승차 거부만 당연시된다는 것이다.
한 쌍둥이 엄마는 "이동할 때마다 평균 무게가 5~6㎏에 전자레인지만 한 카시트 2개를 들고 다녀야 하느냐"고 했다. 시행 첫날 온라인상에는 승차 거부를 당했다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단속 하루 만에 경찰청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때까지 계도·홍보 활동에 주력하겠다"며 단속을 잠정유예했다.
몇 개월 전 자정을 넘긴 시각, 독일 베를린 중앙역 앞에서 15개월 된 아들과 함께 택시를 탔다. 타고 온 기차가 연착돼 생긴 일이다. 택시 기사는 차 트렁크에서 카시트를 꺼내더니 아이를 앉히라고 했다. 아이는 유모차에서 자고 있었다. 집까지는 10분도 안 걸렸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기사에게 "이 시간엔 단속이 없으니, 잠든 아이를 안고 타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기사가 답했다. "당신은 아이의 안전을 단속 시간에만 지키나요?"
한국 도로교통공단 연구에 따르면 카시트에 탑승하지 않은 영·유아의 경우 사고 시 머리 상해치가 10배 증가한다고 한다. 어른들의 미흡함으로 또다시 유예된 영·유아의 안전을 보며 베를린 택시 기사의 물음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