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본 것 같은데..." 자기복제와 자아도취로 비난받는 '패션계의 트럼프'

입력 2018.10.08 10:00

셀린 첫 패션쇼 연 에디 슬리먼…자기복제로 비난 잇달아
이전 회사에서 선보였던 디자인, 새 회사에 그대로 선보여
"일하는 여성 대신 클럽에 가는 어린 여자를 위한 옷" 혹평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에디 슬리먼이 선보인 생로랑 2016 가을/겨울(왼쪽) 패션쇼와 셀린 2019 봄/여름 패션쇼. 같은 패션쇼라 해도 무방할 만큼 비슷한 옷들이 대거 등장했다./다이어트 프라다 인스타그램
2019년 봄/여름 파리패션위크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패션쇼는 단연 셀린이었다. 지난 1월 디자인 디렉터로 임명된 에디 슬리먼의 첫 결과물을 확인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쇼가 끝나자마자 소셜 미디어와 언론은 들끓었다. 찬사보다는 좋지 않은 평이 대부분이었다. 뉴욕타임스는 기사 제목에 ‘맘마미아(Mamma Mia·맙소사)!’라는 말을 넣었고, 할리우드 리포터는 에디 슬리먼을 ‘패션계의 트럼프’라고 표현했다. 이 외에도 ‘자기도취적이다’, ‘감각이 떨어진다’ 등의 혹평이 쏟아졌다. 도대체 왜?

◇ 로고까지 확 바뀐 셀린, 너무 바꿨나?

9월 28일(현지시각) 파리에서 열린 셀린 패션쇼는 디올 옴므와 생로랑 출신인 에디 슬리먼이 줄곧 선보였던 어두운 색조와 날씬한 실루엣의 ‘록 시크’ 룩이 주를 이뤘다. 짧은 기장의 파티 드레스와 가죽 재킷, 바이커 부츠 등 옷만 봐서는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었지만, 이를 본 관객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전의 셀린과 너무나 동떨어져 보였기 때문이다.

한 시즌만에 확 바뀐 셀린. 피비 파일로의 2018 가을/겨울 셀린 패션쇼(왼쪽)와 에디 슬리먼의 2019 봄/여름 셀린./셀린
지난 10년간 셀린은 여성의 시선을 제대로 구현한 브랜드였다. 영국 출신의 여성 디자이너 피비 파일로에 의해 성숙한 여성을 위한 간결하고 여유롭고 우아하고 현대적인 여성복을 선보였다. 그의 스타일은 ‘셀리니즘’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많은 추종자를 양산했다.

하지만 한 시즌 만에 셀린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의 셀린이 일하는 여성을 위한 옷이었다면, 새로운 셀린은 사교계 여성을 위한 옷이었다. 한 트위터리안은 "이것이 남성 디자이너가 보는 여성의 모습"이라며 "일하는 여성 대신 클럽에 가는 어린 여자의 옷을 만들어놨다. 진짜 여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시한 것 같다"라고 혹평했다.

생로랑을 연상케 하는 스타일도 디자이너의 오만함으로 지적됐다. 셀린의 브랜드 유산을 살리긴 커녕, 몇몇 옷은 에디 슬리먼이 생로랑에서 선보였던 옷과 형태와 분위기가 유사해 ‘자기 복제’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한 디자이너는 "새로운 셀린이 아니라, 오래된 생로랑"이라고 평했다.

생로랑 2015 가을/겨울(왼쪽) 패션쇼와 셀린 2019 봄/여름 패션쇼./다이어트프라다 인스타그램
디올 옴므에서부터 보여준 마르고 병약한 이미지의 모델을 기용한 것도 비난을 샀다. 패션쇼에 등장한 총 96벌의 의상 중 87벌을 마른 백인 모델이 입었다. 인종과 체형을 벗어나 다양성이 화두가 되는 최근의 패션계 추세를 역행한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 4년 만에 생로랑 매출 3배 올린 에디 슬리먼, 과연 셀린은

셀린의 변화는 어느 정도 예고됐던 바다. 셀린의 디자인 디렉터로 임명된 에디 슬리먼은 가장 먼저 1960년대부터 써온 로고를 손봤다. 알파벳 E 위에 있던 프랑스 악센트 기호를 지우고, 현대적인 서체를 적용했다. 또 인스타그램의 기존 포스팅을 모두 삭제하는 등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의 정체성으로 셀린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셀린의 디자인 디렉터 에디 슬리먼.그가 셀린에 부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로고를 바꾸는 것이었다./에디 슬리먼
이는 에디 슬리먼이 생로랑에서 선보인 방식이기도 하다. 2012년 이브 생로랑(Yves Saint Laurent)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한 에디 슬리먼은 브랜드 명을 생로랑(Saint Laurent)으로 바꾸고, 알파벳 이니셜을 교차해 만든 특유의 로고도 ‘파괴해’ 현대적으로 바꿨다. 스타일에도 자신의 색을 주입했다. 우아한 프렌치 스타일이었던 이브 생로랑은 에디 슬리먼의 손을 거쳐 시크하고 세련된 록 시크 브랜드로 탈바꿈했다.

마니아들은 분노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생로랑은 에디 슬리먼 영입 후 첫 두 해 동안 두 배가 넘는 매출을 거뒀다. 2011년 이브 생로랑 때만 해도 매출이 약 4615억원(3억5400만 유로)이었지만, 그가 떠나기 직전인 2015년엔 1조2699억원(9억7400만 유로)로 4년 만에 연 매출이 3배 가까이 뛰었다.

셀린을 소유한 LVMH가 에디 슬리먼에게 기대하는 바도 생로랑에서 보여준 실적일 것이다. 실제로 LVMH는 에디 슬리먼을 셀린의 수장으로 임명하면서, 남성복과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고급 맞춤복), 향수 라인을 추가할 것을 주문했다.

셀린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선보인 남성복도 ‘데자뷔’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생로랑 2015 가을/겨울 남성복(왼쪽)과 셀린 2019 봄/여름 남성복./다이어트프라다 인스타그램
스타 마케팅과 디지털 마케팅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에디 슬리먼은 패션쇼를 열기 전부터 자신의 첫 셀린 핸드백을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손에 들리며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문제는 피비 파일로가 설계한 셀린에 심취한 여성들이 에디 슬리먼의 심미적 세계관에 지갑을 열까 하는 것이다. 하이 패션계의 디자인 도용 문제를 지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다이어트프라다는 에디 슬리먼의 이름에 달러 기호를 붙여 "LVMH는 슬리먼($limane) 달러를 사용하고 있지만, 창의력은 없는 것 같다"라고 비꼬았다.

에디 슬리먼은 패션쇼가 끝난 후 프랑스 TM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쇼의 정신은 가볍고 즐거웠지만, 요즘엔 가벼움과 태평함을 의심한다"며 "나를 트럼프와 비교한 것은 기회주의적이고, 우스꽝스럽다. 내 쇼에 등장한 젊은 여성들은 자유롭고 평온했으며, 그들은 원할 때 자주적으로 옷을 입을 수 있다"라고 비난에 대한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