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죽음까지 부르는 '셀카' 사랑

조선일보
  • 한현우 논설위원
    입력 2018.10.08 03:16

    작년 6월 영국 남부 해안의 절벽에서 셀카를 찍던 20대 한국 유학생이 추락사했다. 다른 사람에게 촬영을 부탁한 뒤 절벽 끝에서 펄쩍 뛰어올랐다가 발을 헛디디면서 60m 아래로 떨어졌다. 그 전해엔 페루 정글에 있는 곡타 폭포에서 혼자 여행하던 20대 한국 남자가 셀카 찍기 좋은 곳을 찾다가 500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지난 6년간 전 세계에서 셀카를 찍다가 숨진 사람이 259명에 달한다고 한다. 인도의 한 연구소가 그런 사례가 보도된 것만을 찾아냈으니, 실제 숫자는 더 많을 것이다. '죽음의 셀카' 사고 중 절반가량이 인도에서 일어났다. 그다음은 러시아, 미국, 파키스탄 순이었다. 사인(死因)은 익사가 가장 많았고 교통사고와 추락, 화상이 뒤를 이었다. 변을 당한 사람들의 평균 나이는 23세였고 10명 중 7명가량이 남자였다. 인도에서는 철로 위에서 찍은 사진이 영원한 사랑이나 우정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것도 무모한 셀카를 부추겼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인도 뭄바이시는 아예 위험 지역 16곳을 '셀카 금지 구역'으로 지정했다. 

    [만물상] 죽음까지 부르는 '셀카' 사랑
    ▶신석기시대에 이미 석경(石鏡)이 있었다 하니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화상을 그렸을 것이다. 세계 미술사에서 자화상이 본격 등장한 것은 16세기다. 이전에는 그림 한구석 인물에 그려 넣는 '그림 서명'에 불과했다. 프랑스 사진가 이폴리트 바야르가 사진으로 처음 자기 모습을 남긴 것이 1840년이었다. 형식과 기술이 다를 뿐 자신의 모습을 남기려 한 점에서는 셀카와 다를 바 없다.

    ▶'디지털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는 셀카가 등장하면서 자화상은 예술이나 기록물 또는 기념품에서 일상이 됐다. 셀카의 영어 표현 셀피(selfie)가 옥스퍼드 대사전에 오른 것은 2013년이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5년 한 해에만 셀카 240억장이 구글 포토에 올라왔다.

    ▶자신의 모습을 남기는 것은 자기애(自己愛)의 표현이다. 피카소는 숨지기 1년 전 '죽음에 직면한 자화상'을 그렸다. 프리다 칼로는 화살을 여러 발 맞은 사슴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었다. 이 그림들은 후대에 남아 작가의 당시 고뇌를 엿보게 한다. 하지만 셀카를 찍는 이들은 즉각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반응을 기다린다. 혼자 찍은 사진이지만 남들의 인정을 기대하며 초조해한다. 그러다 보니 별별 위험한 곳에서 별별 아찔한 행동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타인과 '좋아요'로 연결되기 위해 고립과 위험을 자초하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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