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공무원만 행복한 나라

조선일보
  •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입력 2018.10.08 03:17

    무사안일·탁상행정 논란에도 現 정부, 공무원 17만명 늘려… 그리스·남미 같은 악영향 우려
    공무원과 민간의 복지 수준 事實 검증해 특혜 바로잡고 '現場 우선 원칙' 실천해야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공직사회의 비효율과 무사안일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필자 역시 대학 안팎과 국내외를 불문하고 종종 속 터지는 일을 겪곤 한다. 개강 즈음 강사료가 사람마다 다른 황당한 차별 문제를 접했지만 "규정이 그렇다"는 본부 관계자의 말에 물러서야 했다. 불요불급한 조사에 연간 50억원 이상을 쓰는 미디어 정책 관련 위원회를 개혁하려다 거꾸로 위원직에서 밀려났다. 올여름엔 민원 업무 사전(事前) 안내를 받고 어렵게 찾아간 미국 워싱턴DC 소재 한국 총영사관에서 서류 미비를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하지만 지난달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서 발생한 유치원 붕괴 사고는 이 모든 개인적 경험들을 무색하게 한다. 117명의 병아리 같은 어린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이었다. 다(多)세대주택을 짓는다고 가파른 경사지에 위치한 건물 밑까지 바짝 흙을 깎아냈다. 착공 후 수차례 안전 민원이 제기됐지만 동작구청 측은 무시했다. 사고 전날 건물 내부 균열이 확인돼 유치원 측이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했지만 구청 담당자는 불참했다. 그 직전 발생한 유사 사고들로 인해 구청의 부실 행정에 대한 비난이 거세던 시점이었다.

    가히 무사안일에 철판(鐵板)을 둘렀다 할 정도다. 하지만 차이는 있을지언정 무사안일은 대한민국 공직사회 전반에 팽배한 현상이다. 공무원들 입장에서 이는 '만족스러운 저기능 상태(satisfactory underfunction)'의 근로조건이니 바꿀 이유가 없다. 그뿐인가. 공무원은 정년까지 근무가 보장되고 웬만한 기업보다 좋은 연봉, 육아·출산휴직 등을 포함한 환상적인 후생복지, 퇴직 후엔 국민연금 수령액보다 평균 7배 많은 공무원연금을 종신토록 받는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공무원이야말로 너나없이 삶이 불안한 이 시대의 새로운 특권 계층, 심지어 귀족 계급이다. 젊은 시절을 힘겹고 불안정한 근로조건에 시달리다 50대 초중반이면 일터에서 밀려나 중년 이후를 살얼음판 걷듯 보내는 민간인들과는 천양지차다. 이런 공무원들이 향후 5년간 17만4000명 늘어난다. 당장 내년에만 3만6000명이 증가한다. 기업들의 고용 창출이 극도로 위축된 가운데 공무원 수험생 시장만 터져나가고 있다. 굳이 그리스며 남미 국가들 사례를 들추지 않더라도 이런 부조리가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며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이 문제를 방치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공무원 귀족' 논란은 그 누구보다 공직자들 입장에서 거북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모든 공직자들이 박원순 서울시장처럼 옥탑방 생활을 체험할 수는 없다. 실효성 있는 해법 마련의 첫걸음으로 필자는 소득과 근로조건, 출산·육아, 자녀 교육, 의료 복지, 노후 대책 같은 부문에서 공무원 집단과 평균적 국민의 차이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종합적 팩트 체크(fact check·사실 검증)를 제안한다. 이를 통해 공직사회의 과도한 특혜를 바로잡을 때 공직이 바로 서고, 국민적 위화감도 해소되며, 공직 마인드가 없는 이들이 공직을 기웃거리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규정을 앞세워 불합리를 방치하고, 불필요한 일에 혈세를 낭비하며, 생업에 힘든 국민을 몇 차례고 헛걸음하게 하는 공직사회의 고질적인 비효율과 탁상행정도 혁파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그간 나온 대책이며 법령이 즐비하다. 그 모든 대책과 법령의 첫 장(章)에 '현장 우선 원칙(Be there principle)'을 천명할 것을 제안한다. 규정은 현장과 괴리될 때 괴물이 되기 시작한다. 우수 강사 선정을 가로막는 강사료 차별 규정, 조사 업체 배만 불리는 미디어 정책 위원회, 경직과 불편 그 자체인 영사관 민원 업무, 반복된 위험 신호조차 무시하는 구청의 건축물 행정은 그 단면의 모습들이다. 그 결과 교육과 산업 일선의 문제는 악화되고, 민원인들의 고충은 가중되며, 아이들은 위험에 방치된다.

    세월호 사건을 그리도 비통해한 문재인 대통령이 상도동 유치원 붕괴 사고를 그냥 넘긴 것은 너무 아쉽다. "아이들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는 촛불 앞의 맹세는 어디에 갔는가?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 증원에 앞서 공직사회의 특권과 무사안일을 바로잡는 일에 두 팔 걷고 나서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을 아이들이 안전한 나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 되는 진정한 민주(民主)공화국으로 만드는 길이다. 나라의 명운이 이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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