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진보 진영은 어째서 2002년 만들어진 현행 은행법 은산(銀産) 분리를 한 글자도 고치면 안 되는 금과옥조로 취급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인터넷 전문 은행 논란과 관련해 삼성그룹 하나만을 제한하자는 식의 대안이 제시되고 있는데 삼성은 이미 220조원에 달하는 삼성생명을 갖고 있어 10조원 규모의 인터넷 전문 은행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그는 "과거 우리가 자본이 부족한 시절에는 재벌의 사금고화 유혹도 컸지만, 외환 위기와 카드 대란, 금융 위기를 거치며 (재벌엔) 오히려 금융회사를 갖는 위험이 더 커졌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규제 때문에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보다 낮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규제 혁신 1호'로 내건 은산 분리 완화가 여당의 막무가내식 반대에 부딪히다 지난달 20일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문 대통령이 지시한 지 45일 만이다. 20년 넘게 '재벌 개혁' 운동을 해온 김 위원장이 여당과 그 지지 세력의 구시대적 규제 행태에 얼마나 답답하고 질렸으면 아프리카 수준까지 운운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을까.

지금 좌파 진영의 '본능적 반(反)자본' 정서에 막혀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신산업 분야가 한둘이 아니다. AI·드론·빅데이터·핀테크·공유서비스 같은 4차 산업 분야는 물론이고 한국의 인재가 가장 많이 몰려 있다는 의료 서비스 산업마저 진영논리와 하향 평등주의의 벽에 부딪혀 수십 년째 규제에 묶여 있다. 반면 싱가포르와 미국 등의 의료·헬스케어 산업은 유럽·중동·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환자들이 몰려들면서 성장 엔진으로 커가고 있다. AI·드론 등 4차 산업 역시 미국, 중국, 유럽 등이 선두그룹을 형성하며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작년 10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4차산업 혁명위원회가 지난달 말 1기(期) 마지막 회의를 가졌지만 별다른 규제 혁신 성과를 발표하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1980년대 운동권 사고에 갇혀 있는 여권과 귀족 강성노조 등 기득권 세력이 변하지 않으면 4차 산업은 둘째치고 그나마 버티고 있는 반도체·자동차 등 기존 주력산업도 지키기 어려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