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를 敵이라 규정하는 리더는 잠재적 독재자

조선일보
  • 이한수 기자
    입력 2018.10.06 03:00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인 두 저자, 민주주의 제도의 허약성 분석
    선출된 지도자라도 '합법'이라며 대법원·검찰 장악해 독재로 변질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박세연 옮김
    어크로스|352쪽|1만6800원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뉴욕타임스(2016년 12월 16일)에 칼럼을 기고했다. 제목은 '트럼프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민주주의 연구자인 두 학자의 칼럼은 100만회 이상 조회 수를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은 출판사 요청을 받고 칼럼을 확대해 쓴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분석이다.

    민주주의는 쿠데타 같은 폭력적 방법으로만 붕괴하는 게 아니다. 파시즘·공산주의·군부통치 같은 노골적 형태의 독재는 종적을 감추고 있다. 이제 민주주의는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의 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선출된 독재자는 국민의 지지라는 이름으로, 사법부를 효율적으로 개편한다는 명분으로, 부패 척결이라는 기치를 내세우며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두 저자는 잠재적 독재자를 감별할 수 있는 네 가지 신호를 제시한다. ①말과 행동으로 헌법을 위반할 뜻을 드러내거나 선거 불복 등을 언급한 적 있는가. ②정치 경쟁자를 적으로 몰아세우고 헌법 질서의 파괴자라고 비난한 적 있는가. ③폭력을 용인하거나 다른 나라의 정치 폭력을 칭찬 또는 비난하기를 거부한 적 있는가. ④상대 정당이나 시민단체·언론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협박한 적 있는가. 이 중 하나라도 해당한다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독재자에 해당한다.

    민주주의는 쿠데타 같은 폭력을 통해서만 위기를 맞는 게 아니다. 나치 독재자 히틀러는 국민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잡았다.
    민주주의는 쿠데타 같은 폭력을 통해서만 위기를 맞는 게 아니다. 나치 독재자 히틀러는 국민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잡았다. /어크로스

    트럼프는 경고 신호 네 가지에 모두 해당했다. 대선 마지막 토론회에선 패하더라도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대답을 끝까지 하지 않았고(①), 상대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범죄자"로 규정하고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②). 일부 지지자들이 상대 후보 집회를 습격하고 죽이겠다고 협박했을 때 소송 비용을 대겠다고 옹호하고(③),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비판 언론을 처벌하겠다고 협박했다(④).

    독재 성향 정치인이 출현한다 해도 국민이 민주적 가치를 확고히 지지한다면 민주주의는 살아남지 않을까? 저자는 "그 생각은 틀렸다"고 단언한다.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는 유권자 과반수의 지지로 대통령이 됐다.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독재자도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었다. 대중 선동 정치인이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민의 감성을 건드릴 때 민주주의는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잘 설계한 헌법이 민주주의를 지켜주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다. 그 핵심은 상대를 인정하는 '상호 관용(mutual tolerance)'과 주어진 법적 권한을 신중히 사용하는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라고 두 저자는 말한다. 경쟁자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임명 권한이 있어도 측근을 사법부 수장에 앉히지 않는 권력 사용의 절제를 말한다.

    선출된 독재자는 '합법'의 테두리에서 심판을 매수하고, 비판자·경쟁자를 탄압하고, 운동장을 기울인다.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측근을 공직에 대거 임명하고 헌법재판소·대법원·감사원·검찰 같은 중립적 헌법 기관에 친여당 인사를 채워넣었다. 에콰도르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자신을 비판하는 일간신문에 4000만달러 소송을 걸어 승소했고, 터키 에르도안 총리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야당에 우호적인 언론 기업 소유주에게 거액의 벌금을 물려 경영권을 빼앗았다.

    두 저자는 정당의 '문지기(gatekeeper)' 기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두 정당은 그동안 대선 후보를 선택할 때 동료 정치인의 평가가 크게 작용했다. 동료만큼 해당 후보의 능력·인격·이념을 잘 아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검증을 통해 민주주의를 파괴할 가능성이 큰 대중 선동가와 극단주의자를 걸러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더 민주적인 방식을 도입한다는 명목으로 유권자 참여를 확대하면서 정당 기능이 약해졌다. 정당 활동이나 공직 경험이 전혀 없는 트럼프가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대선 후보가 될 만큼 정당의 문지기 기능은 사라졌다.

    두 저자는 포퓰리스트를 막으려면 이념이 다르더라도 정당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가능할까? 오스트리아는 2016년 선거에서 이민자에 대한 폭력을 용인하는 극우 정치인의 등장을 이념이 다른 좌우 정당이 연합해 막아냈다. 원제 'How Democracies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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