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시인 별세···향년 54세, 독일 뮌스터에서 수목장

입력 2018.10.04 16:10

위암 말기 투병하다 별세…27년간 독일서 고고학 연구하며 시 써

고(故) 허수경 시인./문학과지성사 제공
재독시인 허수경(54) 씨가 암 투병 끝에 3일(한국시간) 별세했다. 고인의 시집을 출판해온 김민정 난다 대표는 "자택에서 병세가 악화해 세상을 떠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장례는 현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목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고인은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등을 통해 외로움과 상처를 노래한 시인이다. 이국인 독일의 삶 속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며,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는 고고학적 상상력과 비옥한 여성성의 언어를 보여줬다는 평을 들었다.

경남 진주 출신인 고인은 경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상경해 방송사 스크립터 등으로 일했다.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하면서 시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펴낸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와 '혼자 가는 먼 집'을 낸 뒤 1992년 돌연 독일로 건너갔다.

고인은 뮌스터대학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을 공부하며 박사학위를 받았고, 독일인 지도교수와 결혼했다. 그 와중에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등 6권의 시집을 냈다.

이 가운데 2001년 발간한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는 한국과 독일의 경계, 고고학에 기반한 도시의 폐허를 바라보는 시선, 모국어를 향한 진득한 그리움 등을 뭉쳐 영혼을 노래한 역작으로 통한다.

고인은 시 외에 소설과 동화, 산문 등 다양한 글을 썼으며 독일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했다.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 '너 없이 걸었다', 장편소설 '박하', '아틀란티스야, 잘 가', '모래도시', 동화책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마루호리의 비밀', 번역서 '슬픈 란돌린', '끝없는 이야기', '사랑하기 위한 일곱 번의 시도', '그림 형제 동화집' 등을 펴냈다.

동서문학상(2001), 전숙희문학상(2016), 이육사문학상(2018)을 수상했으며, 싱어송라이터 한희정(39)이 그녀의 작품에 멜로디를 붙인 '바다가'를 발표하는 등 대중문화 예술인들 사이에서도 지지를 얻었다.

고인은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했으며, 이를 지난 2월 김민정 난다 대표에게 알린 뒤 자신의 작품을 정리하는 작업을 해왔다. 지난 8월에는 2003년 나온 산문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15년 만에 새롭게 편집해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라는 제목으로 내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에 마지막으로 펴낸 이 책의 개정판 서문에 이렇게 썼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황홀하고, 외로운, 이 나비 같은 시간들. 그리움은 네가 나보다 내 안에 더 많아질 때 진정 아름다워진다. 이 책은 그 아름다움을 닮으려 한 기록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지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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