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 기자의 돌발史전] 어린이 잡지 '보물섬'에 욱일기가 나왔다고?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입력 2018.10.04 03:01

    유석재 기자
    유석재 기자
    1982년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어린이 잡지 '보물섬'에 역사 만화 '승전고를 울려라'가 연재됐다. 가야가 멸망한 뒤 일본으로 피신했던 왕족이 옛 땅으로 돌아와 유민들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품 속에 숨겨뒀던 깃발 하나를 펴들자 가야 노인이 눈을 크게 뜨며 감탄한다. "오, 이것은 우리 가야의 상징인 태양의 깃발!" 그 깃발은 다름 아닌 욱일기(旭日旗)였다.

    만화는 프랭크 호소노라는 저술가가 '고대 가야인이 바다를 건너가 일본을 정복하고 천황이 됐으며, 가야의 상징이 대대로 전해져 훗날 일본 해군기가 됐다'고 쓴 책의 내용을 반영했다. 물론 학술적 근거 없는 황당한 이야기다. 이 만화가 요즘 나왔다면 보물섬은 네티즌들의 '총공세'에 시달렸을 것이다.

    1987년 국내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탑건'에서도 욱일기가 나온다. 주인공(톰 크루즈)의 동료인 미군 전투기 조종사 한 명이 욱일기가 그려진 헬멧을 쓰고 다닌다. 미국이 욱일기에 '불감증'을 드러낸 사례는 많다. 주일 미 육군 항공대대, 사세보 함대기지, 미사와 해군 항공 시설 등 여러 주일 미군 부대의 공식 엠블럼이 욱일기 문양을 활용한 것이다. 유럽 국가들의 둔감증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 때문에 '한국과 중국이 최근 들어서 욱일기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일본에서 나온다. 일본의 '진보 언론'으로 알려진 아사히신문의 사기(社旗)는 욱일기를 4등분한 모양이다.

    2016년 10월 열린 자위대 사열식에서 욱일기를 든 해군 앞을 지나가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2016년 10월 열린 자위대 사열식에서 욱일기를 든 해군 앞을 지나가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한데 지금 욱일기를 보면 '욱!' 하는 감정부터 앞서는 건 왜일까. 태평양전쟁 종전으로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나라들에서 오히려 욱일기에 대한 반감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은 왜일까.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사실이 있다. 그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일본이 과거 역사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위대 함정이 한국에 올 때 욱일기를 떼 달라'는 부탁에 '무례하다'고 반응하는 건 저들의 인식 구조상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 깃발을 앞세웠던 일본군은 예의를 갖춰 침략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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