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지하철에 걸린 이 그림, 제가 그렸습니다

조선일보
  • 최보윤 기자
    입력 2018.10.04 03:01

    NYT·워싱턴포스트가 사랑하는 한국 일러스트레이터 이동윤씨
    이슈·흐름 정확히 짚은 삽화로 인기

    최근 한국을 찾은 이동윤 작가
    최근 한국을 찾은 이동윤 작가. /이진한 기자
    뉴욕 사는 이동윤(40)씨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포브스 등 미국 유력지들이 앞다퉈 찾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영어 이름 대신 'Dongyun Lee'를 고수하는 그의 전문 분야는 기사를 돋보이게 하는 '에디토리얼 일러스트레이션'. 신문만이 아니다. 이제 그의 이름을 뉴욕 시민 전체가 마주하게 됐다. 지난해 말 뉴욕시가 선정한 '올해의 뉴욕 지하철(MTA) 아티스트' 3인 중 한 명. 뉴욕 하면 떠오르는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의 얼굴로 구성한 작품 'Since 1904'를 지난 4월부터 1년간 모든 전동차 내부 좌석 위에 설치해 전시한다. 뉴욕 지하철은 연간 17억명이 이용한다.

    국내 프로젝트를 위해 지난달 말 한국을 찾은 이동윤 작가는 "1904년 뉴욕 지하철이 개통된 이후 뉴욕 시민의 얼굴을 그려 달라는 의뢰로 완성하게 됐다"며 "뉴욕 하면 세계적인 작가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MTA에서 직접 브루클린 작업실까지 찾아와 '다양성을 담아 달라'고 주문해 신나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브루클린 브리지를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엔 지하철 출퇴근길 뉴욕 시민들 풍경이 담겼다. 신문을 옆구리에 낀 채 커피를 든 남자, 꽃다발을 들고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아이를 안고 기뻐하는 아빠. 스케이트보드를 든 젊은이들은 1달러 피자를 입에 문 채 바람을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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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부터 미 뉴욕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에 전시되는 이동윤씨의 작품 ‘Since 1904’. 한국에 있을 때 입시 미술 교육을 받은 적 없다는 이동윤 작가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그렸던 게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동윤씨 제공
    뉴욕시의 지하철 아트는 더러운 범죄 소굴로 악명 높은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시작됐다. 2001년 세계적인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 '윙크'를 그랜드센트럴역에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공공미술'을 확대하고 있다. 이동윤 작가의 작품은 대형 포스터와 카드 등으로 제작돼 뉴욕 교통박물관과 현대미술관(MoMA) 등에서 판매한다.

    경희대 시각디자인과를 나와 2008년 뉴욕 SVA(스쿨오브비주얼아트)를 졸업한 뒤 미국의 주요 일러스트레이션 공모전을 휩쓸었다.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미국은 물론 유럽의 모든 매체에 보냈다. 하루에도 100통 넘게 이메일을 보내며 자신을 알렸다. 2009년 프랑스 GQ 매거진으로 데뷔했고, 맥도널드, IBM, 레드불, 현대카드 등 기업과의 컬래버레이션도 활발하다. 이동윤 작가는 "상대가 뭘 원하는 지 잘 듣고 대화를 많이 한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뉴욕 생활 초기에 '러너스 월드'라는 운동 전문 잡지에서 '트레드밀에서 뛰는 여성을 그려 달라'고 의뢰했어요. 그땐 영어에 익숙지 않아 트레드밀이 러닝머신인 줄 몰랐어요. 그런 실수를 두 번 다시 안 하기 위해 꼼꼼히 경청하고, 모든 신문 기사를 열독하고 있지요. 그 덕에 요즘은 거의 수정 없이 'OK'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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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워싱턴포스트 헬스&사이언스 면에 실린 이동윤씨의 일러스트, 2014년 딜로이트매거진에 평생교육을 주제로 그린 작품, 이동윤씨가 포트폴리오용으로 그린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세습’. /이동윤씨 제공
    에디토리얼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해 그는 "단순히 기사를 요약하는 게 아니라 사회 이슈와 흐름을 판단해 글의 뉘앙스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하버드비즈니스리뷰와 작업을 하는데, 사업가를 대부분 남성으로 그려 보냈더니 여성 기업인으로 바꿔 달라더군요. 하버드대 총장의 여성 비하 발언 이후 성차별적 요소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거셌던 것이죠." 최근엔 개인 작업실을 찾는 이도 늘었다. 그가 전시용으로 만든 '북한 김정은 부자의 세습' 일러스트는 사고 싶다는 문의가 밀려든다. 신문 고료는 얼마냐고 묻자 "대체로 잘 주지만 뉴욕타임스가 제일 짜다. 이름값 때문인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미국에서 프리랜서로 살아남기 위해선 '내가 제일'이라는 굉장히 강한 자아가 필요하다.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제 아내 덕이 제일 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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