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대통령이 북한 대변인이면 한국 대변인은 누군가

조선일보
  • 양상훈 주필
    입력 2018.10.04 03:17 | 수정 2018.10.04 15:39

    김정은이 한 겸손한 말과 파격적인 행동은 모두 한국 국민 겨냥한 계산된 행위
    진정한 한국의 대변인은 북핵 폐기·평화에 희망 갖되 '의심'하는 5100만 자유 국민

    양상훈 주필
    양상훈 주필

    블룸버그통신이 문재인 대통령을 '북한의 수석 대변인'으로 호칭한 데 대해 청와대의 반박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 때만 해도 이런 보도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제는 한국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북한과 김정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뭐가 어떠냐'고 할 정도로 자신감을 가졌을 수도 있다. 김정은과 만나면 지지도가 10% 이상 오르고 한국 방북단 인사들은 서로 김여정 팬클럽 회장을 하겠다고 난리였다고 하니 이제 세상이 그렇게 바뀌었다고 생각할 법도 하다.

    문 대통령의 평양 매스게임 연설은 그런 세상을 실감케 했다. 문 대통령은 15만 평양 시민에게 한 연설에서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았습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나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습니다. 얼마나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갈망하고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습니다…"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한마디마다 15만명이 똑같이 팔을 위로 들어 '만세' 함성을 질렀다.

    서울의 한 구(區)만 한 평양 도심은 전시용 무대 같은 곳이다. 이곳을 제외한 북한의 거의 전 지역은 50~100년 전 모습이라고 한다. 굶는 사람들이 다시 생기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 현실이 어떤 사람들 눈에는 '놀라운 발전상'으로 보인다.

    세계은행이 최근 발표한 '세계 통치 구조 지수 2018'에 따르면 북한은 언론 자유, 규제, 법치 등 전반적 통치 구조 수준에서 세계 230국 중 최하위권이었다. 그래도 김정은이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나라를 '가슴 뜨겁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눈에는 전쟁을 일으키고 핵을 터뜨리고 천안함을 침몰시켜 떼죽음을 시키고 관광객을 총으로 쏴 죽여도 '민족 자존심'이 있고 '화해·평화를 갈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한국은 이런 눈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잡은 세상이다.

    평양 매스게임과 문 대통령 연설을 TV를 통해 본 사람들 중에는 "섬찟했다"는 반응을 보인 분도 적지 않았다. "임수경 방북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많은 한국 방북단 인사는 그곳에서 감동하고 감격했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만약 한국 대통령이 이런 매스게임을 벌였으면 결사반대했을 사람들이다. 그래도 여론조사는 섬찟함을 느낀 사람보다 감동한 사람이 더 많은 것으로 나온다. 이러니 한국 대통령이 '북한 수석 대변인' 소리를 들어도 그러려니 할 것이다.

    정부는 군 복무 기간을 단축해 병력을 줄이더라도 첨단 무기로 보완한다고 했다. 그게 국방 개혁 2.0이다. 그런데 남북 군사 합의로 전력 증강을 북한과 협의하게 됐다. 사실상 첨단 전력 보강이 힘들어졌다. 국방 정책의 전제가 허물어졌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군인 한 명이 없다. 지금 한국에서 국방을 걱정하고 이래도 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누가 대변하나. 그 우려는 쥐 죽은 듯 사라져도 되나.

    많은 사람이 '남북이 안 싸우면 좋지 않으냐' '통일되면 좋지 않으냐'고 한다. 통일은 민족의 미래다. 전(前) 정부가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는데 실제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통일이냐다. 통일이 미래가 될 수 있고 대박이 될 수 있으려면 자유, 민주, 인권의 통일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이 우리의 미래이고 대박이다. 김정은 폭압 체제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그런 통일도 민족의 미래이고 대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나. 미국 인권재단(HRF)은 "한국 정부는 북한 인권보다 독재자 김정은과 관계 개선을 더 중시하는 입장을 몇 차례 (우리와) 만남을 통해 비쳤다"고 했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도 "한국에서 북한 인권 운동가들이 검열과 제재를 받고 있다.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을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지금 정말 북핵 폐기로 가는 것인지 아니면 그러는 척하는 것인지, 남북은 싸우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인지, 그러는 척하는 것인지 걱정하는 사람은 결코 적지 않다. 이런 국민은 누가 대변하나. 시진핑인가, 푸틴인가, 김정은인가. 트럼프는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하고 한국 대통령은 북한 수석 대변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걱정하는 한국 국민의 대변인은 누구인가.

    북은 문 대통령 평양 연설조차 동원된 15만명 외에 다른 주민들에겐 일절 보여주지 않았다. 김정은이 하는 겸손한 말, 파격적인 모습들도 북한 주민들은 전혀 모른다. 모든 것이 한국 국민을 겨냥한 계산된 행위다. 한국의 5100만 자유 국민이 키(key)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북핵 폐기와 남북 평화의 희망을 갖되 의심하고 검증해야 한다. 지금 한국을 진정으로 대변할 사람은 그런 국민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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