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베트남 개혁·개방 주역… 그의 일생이 곧 역사였다

조선일보
  • 정지섭 기자
    입력 2018.10.03 03:01

    도므어이 前 서기장 101세로 타계

    1990년대 '도이머이(쇄신)' 정책으로 베트남의 개혁·개방을 이끈 도므어이(101) 전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1일(현지 시각) 하노이 국군병원에서 별세했다. 그는 신장·폐질환 등이 겹쳐 6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아 왔다. 베트남 정부는 2일 도므어이의 별세 사실을 공식 발표하고 장례 절차에 들어갔다.

    도므어이 전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2016년 1월 제12차 공산당 전당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당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도므어이 전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2016년 1월 제12차 공산당 전당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당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고령(99세)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 /AFP 연합뉴스
    도므어이의 일생은 베트남 현대사와 겹친다. 그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이던 1917년 2월 하노이 농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응우옌 주이 꽁. 페인트공으로 일하며 돈을 벌다 열아홉 살 때 국제 공산당 조직 인민전선에 가입했고, 3년 뒤에는 베트남공산당의 전신인 인도차이나 공산당에 합류해 반(反)프랑스 독립 투쟁에 본격 가담했다. 스물네 살이던 1941년 프랑스 식민 정부에 체포돼 10년형을 선고받고 악명 높은 수용소 '호아로 감옥'에 갇혔지만 4년 뒤 탈출했다. 이를 계기로 본명 대신 '열 번 탈출한다'는 뜻의 예명 '도므어이'로 불리게 됐다.

    그는 탈옥 후 공산당 하노이 지부에 들어가 지역 프랑스 식민 정부 전복 쿠데타에 성공한 뒤 베트남 각 지역의 공산당에서 당 서기와 대표 등을 맡으며 베트남 국부(國父) 호찌민이 주도한 독립 투쟁을 도왔다. 도므어이는 북베트남 정부 통상장관과 부총리(1969~1971)를 맡아 사기업 철폐와 공장 국유화 작업을 주도하며 권력 핵심부로 진입했다. 사이공 함락(1975년)으로 베트남이 통일된 뒤에는 당 중앙위원(1986년)을 거쳐 1991년 베트남 권력 서열 1위인 공산당 서기장에 올랐다.

    1995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 주최 만찬에 참석한 도므어이(앞줄 왼쪽에서 둘째) 서기장.
    1995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 주최 만찬에 참석한 도므어이(앞줄 왼쪽에서 둘째) 서기장. /e영상역사관
    그는 베트남 공산당이 전후 경제 재건 및 국제사회 고립 타개를 위해 1986년 전당대회에서 주창한 '도이머이' 정책을 본궤도에 올려놓으며 베트남을 '정상 국가'로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경제 도입, 사유재산 인정, 전방위 외교노선 등 당시로선 파격적 정책을 이끌었다. 그의 재임기 베트남은 과거 적국이었던 한국·미국과 잇따라 수교했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1995년)에도 가입했다. 개혁·개방의 주역이라는 사실 때문에 도므어이는 '베트남의 덩샤오핑'으로 불렸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마오쩌둥 스타일의 인민복을 고수하는 검소하고 엄격한 이미지 때문에 강경 공산주의자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능수능란한 실용주의자"라고 했다.

    도므어이는 1970년대 이후 고속 성장을 이룬 한국을 경제 발전의 롤 모델로 여겼다. 1995년 방한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만나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을 요청했다. 2001년 당 고문에서 은퇴하며 정계에서 완전히 물러난 뒤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지만, 지난해 100세 생일 때 지팡이를 짚고 산책하는 모습이 현지 언론에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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