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왕의 부인 '은고'를 아십니까?

입력 2018.10.02 03:00

김홍정, 역사 소설 '의자왕…' 펴내

"초등학생 때 방금 발굴된 백제 무령왕릉 유물을 코앞에 놓고 바라봤다. 발굴 중 느닷없이 폭우가 내리자 유물이 뒤섞여 비를 피한 것도 기억난다."

공주 토박이인 김홍정 작가는“백제사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중국 문헌 속 당나라 소정방 군대 전술까지 복원하며 소설을 썼다”고 했다.
공주 토박이인 김홍정 작가는“백제사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중국 문헌 속 당나라 소정방 군대 전술까지 복원하며 소설을 썼다”고 했다. /솔출판사
충남 공주에서 나고 자란 김홍정(59)이 역사 추리소설 '의자왕 살해 사건'(솔출판사)을 냈다. 작가는 고향에서 30여 년간 국어 교사로 일하며 틈틈이 창작해왔지만, 지난해 교단에서 명예퇴직하곤 "백제사 편견을 바로잡겠다"며 소설 '의자왕 살해 사건'에 매달렸다. 소설의 부제는 '은고(恩古)'. 백제 의자왕의 부인으로, '일본서기'에만 그 이름이 남아 있다. '백제 왕 의자, 처 은고, 아들 융 등과 신하인 좌평 천복, 국변성, 손등 등 무릇 오십여 명이 7월 13일 소정방에게 잡혀서 당나라로 끌려갔다'고 '일본서기'는 전한다. 작가는 역사에서 잊힌 은고를 통해 여성 중심으로 백제사를 재구성했다.

작가는 "당서(唐書)는 '의자왕은 660년 낙양에서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고 기록했는데, 의자왕이 급사한 것이 심상치 않다"며 "당에 붙잡힌 의자왕이 죽어야 백제 땅에서 새 왕이 옹립돼 부흥 운동이 불같이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의자왕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은 '타살설'을 제기한 셈이다. '의자왕이 죽자 661년 다섯째 아들 풍이 남부여(당시 백제 국호) 대왕으로 추대돼 3년 동안 백제 부흥 운동을 이끌었다'는 게 실제 역사다.

백제 금동대향로
백제 후예인 작가는 "남부여에선 신하들이 임금을 '어라하'로 불렀다"며 당시 국호와 존칭을 비롯해 몇몇 어휘를 소설에 되살렸다. 사료와 허구를 대비하는 기법으로 소설을 이끌어갔다. 도입부에선 의자왕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다. 작가는 "의자왕은 즉위 이후 좌평들 뜻에 따라 국정을 운영했지만, 10여 년 뒤 좌평들을 제거해 실권을 되찾았다"고 설명한 뒤 "소설은 은고가 배후에서 모든 일을 꾸민 것으로 묘사했다"고 했다. '삼국사절요'의 '백제 의자왕'편에 '19년 봄 2월, 여우 떼가 궁중에 들어왔는데 흰 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 책상에 올라갔다'는 기록을 소설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육군 작전 장교 출신이기도 한 작가는 중국 문헌을 토대로 당나라 소정방 군대의 전술을 복원하면서 백제 패인(敗因)을 분석했다. 작가는 "소정방이 당과 남부여를 오가는 선박을 모조리 징발했기 때문에 남부여는 당의 침공 정보에 어두웠다"며 "소정방은 보병으로 하여금 산성을 지키는 남부여 군사들과 싸우게 해놓곤 주력 부대인 기병(騎兵)이 들판을 우회해 사비성을 공격하게 했다"고 풀이했다. 그는 "남부여의 주력군이 사비성에서 먼 신라와 맞닿은 국경 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소정방의 속전속결에 대응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소설엔 백제의 비밀 무사단(武士團) '검은새'가 등장한다. 작가는 "백제 금동대향로〈작은 사진〉의 꼭대기에 올라앉은 봉황새와 왕릉 벽화의 주작(朱雀)이 보여주듯 환상의 새는 백제인의 꿈을 대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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