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원 도쿄 특파원

진도7의 강진(强震) 이 발생한 일본 홋카이도에 지난달 초 취재하러 갔을 때다. 지진 피해 지역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자주 목격한 것은 기자와 같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일련의 자위대 트럭 행렬이었다. 트럭 옆에는 '재해(災害) 복구 지원'이라고 쓰인 대형 플래카드가 달려 있었다. 군용 차량이 대민 홍보용 플래카드를 옆에 걸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일반 국민이 자위대 존재를 느끼는 것은 지진, 태풍, 폭우를 비롯한 재해가 발생했을 때가 많다. 홋카이도 지진뿐만 아니라 올 7월 서(西)일본 폭우 때도 삽과 곡괭이를 든 자위대원은 쉴 새 없이 TV에 나왔다.

얼마 전 아베 신조 총리가 자민당 총재 3연임에 성공한 후, 첫 인터뷰에서 강조한 것이 '헌법 개정'이다. 그가 하겠다는 개헌을 요약하면, 일본 국민에게 주로 '재해 복구 요원'으로 인식된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明記)해 그 역할과 규모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자위대가 자랑스럽게 임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치가로서의 책무"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아베 내각은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근 부쩍 자위대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달 중순에는 일본 잠수함과 호위함이 각각 별도로 남중국해에 집결해 중국이 자국 권리가 미치는 곳이라고 주장하는 '9단선(段線)' 해역에서 실전 훈련을 벌였다. 자위대는 항공모함과 비슷한 크기의 호위함에서 날아오른 헬기가 중국 잠수함을 잡아내려고 훈련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관방장관은 이와 별개로 자위대가 동해를 넘어 괌으로 향하는 북한 미사일을 요격할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했다. 2015년 정비한 안보 관련법을 바탕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적극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1950년 북한이 38선을 허물고 내려와 6·25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이 이를 빌미로 만든 경찰예비대가 자위대의 모태다. 일본은 개헌을 해서라도 자위대 역할을 확대하고 사기를 올리려는데 한국은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우리 군(軍)은 마치 남북 대화의 속도를 내는 데 쓰이는 '협상 칩(chip)' 처지가 돼 버린 것 같다. 9·19 평양 공동선언은 NLL 포기 논란을 낳으며 서해를 지키기 위해 절치부심해온 군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군사훈련을 하려면 북한으로부터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북의 도발을 억제했던 군 엘리트들은 '적폐' 딱지를 붙인 채 대거 물갈이되고 있다. 국군의 날 70주년 행사는 줄이고 또 줄여 저녁에 전쟁기념관에서 약식으로 치러졌다.

일본의 '자위대 개헌'이 가져올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경계해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사안이 한국군의 형해화(形骸化)일 것이다. 한번 줄어든 국방력과 군인 사기(士氣)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