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과 격변의 시대… 대한제국과 그 皇宮이 돌아왔다

입력 2018.09.28 03:01

덕수궁 복원, 돌담길 완전 개통
'제국'의 황제 오른 高宗 재조명

"드라마를 보면 구름다리 밑으로 전차가 다니는 장면이 자주 나와요. 그게 바로 경운궁(덕수궁)과 경희궁을 연결하던 구름다리 '홍교(虹橋)'입니다." "고종은 앉아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어요. 외국 은행에 거액의 비자금을 예치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매주 화요일 밤 서울 서촌에선 19세기 말~20세기 초 대한제국 시대로 떠나는 시간 여행이 펼쳐진다. 경복궁 영추문 앞 역사 전문 서점인 '역사책방'은 지난 8월 말부터 '션샤인 학당'이라는 공부 모임을 열었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고 "신미양요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며 찾아온 손님을 위해 백영란 대표가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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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미스터 션샤인’에서 커피를 마시는 고종(이승준). 고종 황제가 덕수궁 정관헌에서 즐겨 마시던 커피를 근대의 상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래픽=김하경, 사진=문화재청·조선일보 DB·tvN
대한제국(1897~1910)과 그 황궁(皇宮)이었던 덕수궁이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자체 최고 시청률 16.6%를 기록한 '미스터 션샤인'의 인기로 촉발된 관심이 마침 대규모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인 '근대사의 주(主)무대' 덕수궁으로 이어져 시너지를 내고 있다.

덕수궁 관람 인원은 지난해 상반기 71만3552명에서 올 상반기 77만3753명으로 8.4% 증가했다. 10월 말에는 아관파천 때 고종이 지나갔다는 '고종의 길'(덕수궁길~정동공원)이 정식 개방되고, 끊어졌던 덕수궁 북쪽 돌담길 70m 구간도 이어져 1.1㎞의 돌담길을 한 바퀴 돌 수 있게 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당시 역사에 대한 질문이 수시로 올라온다. '션샤인 학당'에 참여하는 김인철(57)씨는 "망한 나라의 마지막 시기라 그동안 우리가 들추기 싫어했던 역사였다"며 "잘못 아는 부분이 많은 만큼 더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한제국:'근대'와 '망국'의 중첩

대한제국에 대한 관심은 조선의 전통문화가 서구의 '신문물'과 처음 만나는 충돌과 격변의 시대였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1898년 덕수궁에 최초의 전화가 가설됐고, 1899년에는 전차와 철도가 개통됐다. 1900년에는 서울 시내에 5만5000촉의 전등이 환하게 밤을 밝혔다. 사람들은 갑자기 밀어닥친 신문명의 세례 앞에서 두려워하면서도 흥분했다. 2016년 '밀정' '아가씨' '해어화' 같은 한국 영화들이 1920~30년대 모더니즘 시대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면, 올해는 대한제국기까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 셈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2~3년 전부터 스토리 공모 대전 응모작 중 구한말을 다룬 작품이 크게 늘어났고, 생활·문화 같은 미시사(微視史) 이야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 시대 사람들의 삶과 스타일이 새로 주목받으면서 '블루오션'이 됐다는 뜻이다.

대한제국기를 공부하는 '션샤인 학당' 모임.
대한제국기를 공부하는 '션샤인 학당' 모임. /장련성 객원기자
"조선은 변하고 있는 것"이라는 손녀 고애신(김태리)의 항변에 "틀렸다. 망하고 있는 것이다"고 일갈하는 '미스터 션샤인' 속 고사홍(이호재)의 대사처럼 대한제국기는 열강의 압박 속에서 국권을 잃어가는 수난의 시기이기도 했다. 이 점에서 또다시 열강의 이해관계 속에 둘러싸인 지금의 '우리'와 비교되기도 한다. '역사책방' 백영란 대표는 "그때 조선은 무방비 상태로 당했지만 이제는 주도적으로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전봉관 카이스트 인문사회학부 교수는 "대한제국에 대한 관심은 민족주의 담론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덕수궁: 미완의 개혁과 짓밟힌 역사

'무능한 군주'로만 여겨졌던 고종에 대한 재평가도 활발하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한국사)는 "광무제(고종)는 서양 문물 수용과 외국 자본 유치를 통해 근대화를 추진했고, 중립국을 선포해 자주적인 나라를 건설하려 했다"며 "이 사실을 이제 사람들이 조금씩 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 '미완의 개혁'이 이뤄진 주무대는 러시아 공사관에서 돌아온 고종이 제국 선포와 함께 의욕적으로 건설을 추진했던 덕수궁이었다. 전통 전각인 중화전·함녕전과 서양식 건물인 정관헌·중명전·돈덕전·석조전이 함께 세워졌다. 하지만 1904년 러일전쟁 이후 본격적인 침략의 마수를 뻗친 일제의 흔적이 이 궁궐에 고스란히 남게 됐다. 을사늑약 체결(1905), 헤이그 특사 파견과 고종 퇴위(1907), 고종 승하(1919) 같은 사건들이 모두 덕수궁에서 일어났다. 고종이 환갑 때 얻은 늦둥이 딸 덕혜옹주를 기르며 궁궐 내 준명당을 개조한 유치원까지 손을 잡고 데려다 줬다는 부정(父情)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덕수궁은 현재 광명문 원위치 이전(올해), 돈덕전 복원(2021년), 선원전 영역 복원(2038년) 등 '제 모습 찾기' 공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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