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75] 이상한 鄕愁 냄새

조선일보
  •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8.09.28 03:12

양해원 글지기 대표
양해원 글지기 대표
중학교 간다고 머리를 밀었던가. 그 이발관이 아직 있었다. 떠나온 저층 아파트는 잔뜩 지쳐 보인다. 빈터를 싹 차지한 승용차, 강변에 들어서 하늘 가린 아파트가 달라진 모습이랄까.

여기를 왜 찾아왔더라? 하긴, 태어나 살림 나기까지 숱하게 이사하느라 마땅히 고향이랄 데가 없는 처지. 초등학교·중학교 걸쳐 6년을 살았으니, 말하자면 향수(鄕愁)로구나…. 고향 내음만 풍기는 줄 알았던 이 말에서 곧잘 엉뚱한 냄새가 난다.

'낡고 오래된 것엔 새 물건에서 찾을 수 없는 향수가 배어 있다.' 사전 뜻풀이를 섞어 보자. '새 물건에서 찾을 수 없는 고향 그리는 마음'? 낡고 오래된 것이라고 마냥 '고향'과 연관되지는 않을진대 '정겨움' '애틋함' 따위를 말했나 보다.

'어릴 적 즐기던 오락실 게임을 통해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어린 시절 누구나 고향에서 살고 오락실 게임을 하지는 않았을 터. 그냥 게임을 즐기던 '추억(追憶)'을 뜻함이리라.

'이번 사업 주안점은 책방 골목의 추억과 향수를 그대로 남기는 것이다.' 나고 자란 사람 아니고서야 책방 골목에서 향수를 느낀다면 이상하다. '예스러움'이나 '소박함'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고도성장기 향수에서 벗어나 삶의 질 높이기에 힘쓸 때다.' 고도성장하던 때에 무게를 둔다는 뜻이니 '집착' 같은 말이 어울린다.

'공원을 찾은 사람들은 김 추기경의 향수와 체취를 느낄 수 있다며….' 향수가 아니라 그의 인품을 우러르거나 그리는 마음이겠지.

향수를 '사물이나 추억에 대한 그리움'으로도 풀이한 사전이 있기는 하다. 지나치게 넓은 쓰임새를 설령 받아들인다 해도, 위에서 보았듯 말뜻이 너무 두루뭉술해진다.

세월이 천천히 흐른 그곳을 나오는 고가(高架)에 섰다. 건너편 동네는 딴 세상처럼 휘황하다. 어둑한 옛 동네가 불현듯 가슴속에서 환히 빛날 줄이야. 망설일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고향이 어디냐 묻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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