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협상 시한에 쫓겨선 안 되나 비핵화 시한은 분명히 못 박아야

조선일보
입력 2018.09.28 03:20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6일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 협상에 대해 "2년, 3년 혹은 5개월이 걸려도 상관없다"면서 "나는 시간이 충분하며 시간 싸움(time game)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말은 엇갈린 해석을 낳고 있다. 미국은 지난 6월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 때 충분한 준비 없이 회담에 임했다가 북한으로부터 실질적인 핵 폐기 조치를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확보해 놓지도 않은 상태에서 회담 날짜부터 덜컥 정했다가 북한 전략에 말려들었다고 비판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1차 회담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협상 시한에 쫓기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면 옳은 방향이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미·북 정상회담 시기에 대해 "올바른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 우리는 물건 내용을 확인하지도 않고 사는 '충동구매'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한편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시한을 사실상 포기한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까지만 해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비핵화를 마치겠다고 큰소리쳤다가 회담 후에는 자신의 첫 임기 내(2021년 1월)까지로 후퇴하더니 이번엔 아예 비핵화 시한이 없는 것처럼 말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진심이 이쪽이라면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파키스탄이 1998년 5월 이틀에 걸쳐 6차례 핵실험을 했을 때 전 세계는 경악했고 강력한 제재를 가했지만 파키스탄은 시간을 벌며 버티면서 결국 사실상의 핵보유국 입지를 확보했다. 북한은 작년 11월 6차례 핵실험과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마치면서 핵무력 완성 선언을 했다. 그 이후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자제하면서 미국 눈치를 살피고 있다. 파키스탄 모델을 흉내 내 핵 보유국을 인정받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시한을 포기한다면 이런 북의 전략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협상 시한에 쫓기면 북한에 주도권을 뺏기게 되지만 그렇다고 비핵화 시한을 허물고 방치하면 결국 북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북의 비핵화는 복잡하고 어려운 길이며 그래서 한·미 간에 물샐틈없는 공조와 치밀한 전략이 요구되는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협상은 시한에 쫓겨 졸속으로 되는 일이 없어야 하고' '합의에는 반드시 명백한 북핵 폐기 시한을 못 박아야 하고' '그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대북 제재는 철통같이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셋만은 어떤 대통령이나 정부도 흔들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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