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국민 생명은커녕 국군 목숨도 못 지키게 됐다

입력 2018.09.27 03:17

평양에서 군사 분야 합의로 NLL무력화·서북 5개섬 고립… 북한軍 감시·타격도 불가능
자체 훈련 중단까지 약속해 우리 장병들은 '바람 앞 등불'… '국민공청회'로 끝장 토론해야

신원식 前 합참 작전본부장·예비역 육군 중장
신원식 前 합참 작전본부장·예비역 육군 중장
'9월 평양 공동선언'의 핵심은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다.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안보에 문제가 없고 북한이 오히려 양보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군사 지식과 양심만 있다면 황당한 왜곡임을 알 수 있다.

군비 통제의 기본은 공격용 무기는 줄이고 정찰은 확대해 상대방 의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미국, 러시아, 유럽 국가들이 상호 자유로운 비무장 공중 정찰을 허용한 '항공 자유화 조약(Treaty on Open Skies·1992년)'에 서명한 게 이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번 평양 합의로 전방 지역 감시가 불가능해져 기습을 당하거나 과도한 대응을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군사적 신뢰를 위한 기본 원칙도 무시한 합의는 오히려 평화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군사작전 측면에서 이번 합의는 우리 인구의 절반이 밀집한 수도권을 위험에 빠트린 최악의 도박이다. 북방 한계선(NLL)은 사실상 무력화되고 서북 5도서와 덕적도가 고립됐다. 반면 북한의 장사정포·대함(對艦) 미사일 등 핵심 전력은 육지에 배치돼 영향이 전혀 없다. 북방 한계선과 수도권 서(西)측방을 지키는 우리 해병대와 해·공군 합동 작전 체계는 뿌리째 흔들리게 됐다.

우리보다 2~3배 많은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과 균형을 이루는 것은 우리 군의 첨단 전력, 즉 정보 감시, 정밀 타격력이다. 군사분계선(MDL)에서 20~40㎞가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되면, 수도권을 목표로 전방 전개한 북한군 주력의 동향을 감시할 수 없고 근접 정밀 타격도 불가능하다. 북한군에게 우리 첨단 전력이 무력화된 공간에서 완전한 '성역'을 주고 언제든 편안하게 수도권 기습에 성공할 수 있는 행동의 자유를 선물로 준 셈이다.

북한 장사정포 등 전선 지역 감시와 도발 시 대응 사격을 위한 표적 정보는 군사분계선 남쪽 20㎞ 이내에서 운용되는 전방 군단 이하의 무인기가 가장 효과적이다. 금강 정찰기, 글로벌호크, 위성 등은 북한 후방의 전략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하루 몇 회만 운용돼 전선을 계속 감시할 수 없다.

또 다른 대북 군사적 우위인 정밀 타격력에서 공대지(空對地) 미사일은 사거리가 길어 적 후방에 있는 전략 목표를 안전하게 타격할 수는 있으나 탄두 위력이 작아 장사정포와 지휘소 같은 견고한 지하 시설은 파괴할 수 없다. 사거리 20㎞ 이내에서 GPS나 레이저로 유도되는 수천 파운드 대형 폭탄을 사용해야 한다. 미사일로 설사 지하 시설을 파괴할 수 있다 해도 폭탄보다 수십 배 비싼 미사일을 사용하는 사치(奢侈)는 돈 많은 미군도 안 한다.

더욱이 미국이 연합 훈련 중단을 선물한 것에 뒤질세라 우리도 자체 훈련 중단을 북한에 약속했다. 실전적 훈련과 부단한 작전 활동을 해도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 평소 실력의 반(半)도 발휘하지 못한다. 우리 장병의 손발을 묶는 잘못된 작전 수칙에도 합의해 줬다. 연평해전에서 이 수칙 때문에 우리 장병이 억울하게 희생된 것을 잊었는가. 그때는 그나마 숙달된 정예병이었으나 앞으로는 훈련 한번 제대로 못 한 장병이 우왕좌왕 생사를 넘나들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뿐인 생명을 '우리 민족끼리' 제단에 바치라고 하기엔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미래 군사력 증강도 남북이 협의하게 돼있다. 북한은 핵 위주로 군사력 증강을 하면서 이는 미·북 간 문제라고 우길 테니 우리만 못 하게 된 꼴이다. 정부가 병력을 줄이는 대신 첨단 전력으로 보강하겠다는 '국방 개혁 2.0'이 잉크도 마르기 전에 지금 있는 첨단 전력은 손발을 묶고 미래 첨단 전력 확보도 어렵게 됐다. 북한은 '영원히 착한 나라'이기를 믿는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군사 합의로 평화를 확보하려면 북한도 약속을 지키는 '정상 국가'여야 한다. 7·4 공동성명(1972년) 이후 올 4월 판문점 선언 전까지 남북한 간에 크고 작은 회담이 655회 있었고 245회는 서명까지 했지만, 북한은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 이번엔 북한이 달라졌다는 기대를 전제로 과거를 묻지 말고 '무조건 믿어' 하는 이번 합의는 대한민국 국방을 무력화한 치명적 실책이다. 북한이 예전처럼 도발하면, 우리 장병과 국민 생명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이다.

그래서 정부에 국민 공청회를 요청한다. 탈(脫)원전 공청회도 했는데 국민 목숨이 달린 문제이니 수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여당과 야당이 추천한 전문가들이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끝장 토론을 하고 국민의 판단을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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