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 性차별하나]⑤ '곰탕집 사건'은 여성 진술만으로 판결했나…'피해자 말이 증거'는 논쟁中

입력 2018.09.26 15:51

직장인 남성 A씨가 식당에서 여성의 엉덩이를 만진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A씨가 추행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1심 법원은 피해 여성 B씨가 즉각 항의한 당시 상황과 B씨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 등을 토대로 A씨가 유죄라고 판단했다. 이에 A씨 아내가 "남편은 결백한데 피해 여성의 말만 듣는다.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을 올렸다. 이 글은 30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A씨를 옹호하는 네이버 카페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 회원들은 다음 달 27일 거리에 나서 시위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곰탕집 사건만이 아니다. 얼마 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배우 조덕제씨의 ‘여배우 성추행’ 사건도 피해자인 배우 반민정씨의 진술이 결정적 증거가 됐다. 지난 19일 1심에서 징역 6년이 선고된 전 연희단거리패 감독 이윤택씨 사건도 피해자들의 진술이 증거가 돼 유죄 판결을 이끌었다.

과거에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로 판단됐을 성범죄 사건들이 유죄로 인정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처벌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가해자보다 피해자의 진술과 경험을 더 우선하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확산되면서다. 이런 변화를 여성계는 반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주승희(47·사진) 덕성여대 교수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반발하는 목소리에 대해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무지하고 불합리한 저항이라고 매도할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여성 편향’으로 치우치지 않길 바라는 합리적인 비판도 있다"고 했다. 또 "피해자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겠지만 헌법의 자유·평등 원칙과 형사소송법의 무죄추정 원칙과 증거재판주의가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주 교수를 만나 성범죄가 더 넓게 처벌되는 사회 변화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국민 정서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8월 18일 오후 성차별·성폭력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조인원 기자
-요즘 성범죄 사건은 처벌을 해도 문제이고, 무죄라고 판단해도 논란이 된다. 어떤 결론이 나도 양쪽 모두 비난을 한다. 국민 법감정에 일관성이 없는 것 같다.
"단기간에 급속도로 변화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다. 세대 간 생각하는 방식에 차이가 크다. 윗세대는 유교이념이 여전히 중요하다. 나처럼 60·70년대에 태어난 세대도 자라면서 노골적인 남녀차별을 직접 경험했거나 종종 목격했을 것이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헌법 이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대다. 예컨대 전직 대통령 탄핵은 어떤 이들에게는 어버이를 끌어 내린 사건이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국민의 종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쫓아낸 사건이다.

성범죄도 서로 다른 관점을 갖고 살아온 이들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지금의 변화는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세대 간 차이뿐 아니라 젊은 세대 안에서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고 있지 않나.
"성별 간 차이도 있다. 지난 수십년간 성차별적인 제도가 많이 개선됐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차별을 느끼고 있고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 남성 일부는 여성이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 병역 의무가 그 예다. 누구는 2년을 희생해 국가에 기여하는데 여성들은 안 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엉뚱하게 이어지기도 한다. 성범죄 관련 기사에 보면 종종 여자는 군대에 안 가냐는 전혀 상관없는 댓글이 달리기도 하지 않나."

-남성들의 피해의식은 성범죄 사건에 특히 나타나는 것 같다. 피해자가 여성일 때와 남성일 때 잣대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사실 남성 역시 성범죄 피해자가 될 경우 불합리한 차별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는 여성들이 성범죄 피해를 적극 호소하는 데 대해서는 점차 수용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지만 남성들은 이런 피해에 대해 말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 아니냐. 얼마 전에도 한 30대 남성이 연상의 여성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는데도 억울하게 덮고 넘어갔다며 하소연해 시끄러웠지 않았나."

지난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자한테 성추행당했는데 가해자는 기소유예’라는 글이 올라 화제였다. 이 글에는 26일 오전 11시 현재 5700여 명이 동의를 했다. 글 작성자는 지난해 8월 노래방에서 자신보다 한 살 많은 여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한다. 여성이 그의 엉덩이를 만졌고, 이를 문제 삼자 주변에서 ‘장난이니깐’, ‘남자니까’ 참으라 했다는 것이다. 실제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했지만 검찰은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최근 곰탕집 사건이 불거지자 그는 "내게는 가해자가 추행을 시인한 메시지도 있고, 일관되게 진술했는데 왜 피해사실이 인정되지 않았느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금 변화가 맞는다고 보는가. 사람들마다 생각이 너무 달라 헷갈리고 복잡하다.
"여러 의견과 가치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헌법 이념이 그 답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그동안 피해자 목소리를 충분히 듣지 않은 것은 맞지 않나. 다만 지금 변화에서 일부 신중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과 오로지 피해자 말만 듣는 것은 다르다. 피해자의 진술에만 무게를 두어 증거재판주의와 무죄추정원칙을 훼손하거나, 헌법에 명시된 자유와 평등을 침해했다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

올 4월 대법원이 성희롱 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하며 피해자(여대생) 관점에서 생각하라고 판시한 일이 있었다.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하는 데는 찬성한다. 하지만 피해자 관점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우려됐다. 피해자 관점도 중요하지만, 당사자들의 평상시 태도, 성향, 주변 상황, 제3자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럼 ‘곰탕집 사건’은 어떻게 보는가. 법원이 피해자 진술만 갖고 판결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경계선에 놓인 애매한 사건이다. 만진 것을 본 목격자도 없고, CCTV에는 직접적으로 신체 부위를 접촉한 모습이 담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건은 피해자 진술 외에도, 피해 여성이 곧장 저항을 했다는 ‘상황’, 가해자와 피해자가 어떠한 이해관계도, 면식도 없는 초면이라는 ‘관계’, 피의 남성이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자리를 떠났다는 ‘정황’ 등이 있었다. 이런 여러 요소가 감안했을 것으로 보인다. 유죄 판결이 잘못됐다고 단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접점이 보이지 않는 지금의 세대간, 남녀간 갈등은 어떡해야 할까. 싸움은 점점 더 과열되는 것 같다.
"동시대에 살고 있지만 윗세대와 아랫세대의 배움이 다르고 서로의 경험이 다르다. ‘같은 세대라도 성별에 따라 경험과 인식이 다를 수 있다’는 상식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서로의 다른 입장과 생각에 대해서 외면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옳고 그름을 토론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특히 합리적 비판에 대해서는 경청할 필요가 있다."

☞주승희 덕성여대 교수는?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해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미국 하와이대 윌리엄 S. 리처드슨 로스쿨에서 법학석사(LLM)를 마친 뒤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현재는 덕성여대 법학과 부교수로서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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