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은 촌스러워… 대세는 '한글 스타일'

조선일보
  • 송혜진 기자
    입력 2018.09.20 03:01

    외국어 많이 썼던 간판과 로고, 최근 독특한 한글 표기 급증
    대학가도 외국어 줄고 한글이 절반 "쉽고 예뻐… 애국심 마케팅 아냐"

    "이 간판 뭐야? 귀엽다!" 19일 오후 2시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골목을 지나던 20대 여성 두 명이 걸음을 멈추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들 발길을 붙든 건 한 빵집 입구에 있는 'ㅏㅜㅓ'라는 간판이었다. 이 집 간판은 처음엔 'OUR'였다. 올 초 이곳에 새 가게를 내면서 한글 모음 세 개를 새긴 것으로 바꿨다. 이 빵집을 기획한 CNP컴퍼니 측은 "한글 표기가 영어보다 세련되고 예뻐 보인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한글 간판이나 상품명이 새삼 각광받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간판이나 상품에 새겨지는 글씨는 대부분이 영어나 프랑스어 같은 외국어였다. 낯설지만 남달라 보이는 인상을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요새는 반대다. 한글 표기가 더 근사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외국어도 한글로 표기해야 더 멋진 시대다. 10~20대일수록 한글 디자인에 더욱 열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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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서울 신사동 한 빵집 간판엔 ‘ㅏㅜㅓ’라고 새겨져 있다. 영단어 ‘OUR’를 한글 모음으로 바꾼 것이다. ②‘○○밀크’ 같은 표기는 요즘 스타일이 아니다. 서울 논현동 한 카페에서 파는 우유엔 ‘희다’고 적혀 있다. ③서울 이태원동 카페 ‘무진장’은 가게명을 한글 자음으로만 표기했다. /이태경 기자

    경기 광주에 있는 '남촌 골프장'은 재작년 리모델링하면서 골프장 이름을 외국식으로 바꿔보려고 했다. 경쟁 업체에서 너도나도 '트리니티'나 '힐사이드' 같은 이름을 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촌 골프장'을 유지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영문 표기도 'Namchon'으로 했다. 각종 상업 공간과 회사 로고 등을 디자인하는 켈리타앤컴퍼니 최성희 대표는 "거창한 외국말을 갖다 붙인 이름이나 로고가 더 촌스럽고 창피하다고 느끼는 시대"라고 했다.

    2015년 10월 한 일간지는 '우리말 사라져가는 대학가… 간판 절반이 외래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불과 3년 지난 요즘 대학가는 정반대다. 서울 봉천동 서울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골목 구석구석만 돌아봐도 한글 간판이 더 많다. 대학생 김은결(26)씨는 "요즘 우리 또래는 외국 여행을 가볼 만큼 가봤고 외국어도 대부분 잘한다. 그만큼 어설프게 잘난 척하는 간판보단 솔직하고 편한 한글이 더 멋져 보인다"고 했다.

    서울 이태원동 카페 '무진장'을 운영하는 이양인(31)씨는 "한글 간판이나 로고는 직관적이다. 소셜미디어의 이모티콘이나 짧은 문자메시지처럼 명확하고 편하다"고 했다. 해석하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쉽고 귀여워서 젊은 세대가 한글 표기에 더 열광한다는 얘기다. 이씨는 "애국심 마케팅이 아니라 유행이고 스타일"이라고 했다.

    웃음을 불러일으키고 싶을 때, 기발한 착상을 담고 싶을 때도 한글 간판은 자주 쓰인다. 서울 익선동 한 프렌치 레스토랑 이름은 '르불란서'. 프랑스식 단어 'le'와 '불란서'라는 우리식 표기를 합쳤다. 말이 안 되는 표기법이지만, 이 식당의 성격을 대충 알게 해준다. 같은 동네 타이 레스토랑 이름은 '동남아'다. 이국의 음식을 우리식으로 재해석해서 내놓는 곳임을 짐작하게 하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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