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핵 폐기 실질 진전 뭐가 있나

조선일보
입력 2018.09.20 03:20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18일과 19일 정상회담을 갖고 평양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김정은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내에 서울에 올 것이라고 했다. 남북 정상이 이처럼 자주 만나게 되면 서로에 대한 오해를 줄일 수 있고 한반도 긴장 완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김정은이 육성으로 "한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은 의미가 있다. 지난 25년 동안 김씨 일가가 공개 석상에서 '비핵화'라고 해석될 수 있는 말을 직접 한 것은 처음이다. 이 말은 실천으로 이어져야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작 평양 선언에선 북한 핵 폐기와 관련한 실질적 진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북측은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전문가들의 참관 아래에 폐기한다는 것과 미국이 상응 조치를 취한다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할 용의를 표명했다. 동창리 시설 폐기는 6·12 미·북 정상회담 때 북한이 이미 약속했던 사안이다. 북한은 이미 이동식 발사대를 확보해 동창리 시설은 쓸모도 없는 것이다. 영변 핵시설은 1993년 1차 북핵 위기 때부터 문제가 된 5㎿ 원자로와 거기 딸린 재처리 시설을 말한다. 북은 이미 핵폭탄을 영변의 플루토늄이 아닌 다른 지하 시설에서 농축우라늄으로 만들고 있다. 북한은 지상으로 드러나 있고 노후한 데다 규모가 작아 이미 실효성이 없어져 고철이나 마찬가지인 영변 원자로를 협상 대상으로 내놓은 것이다.

북핵 폐기의 실제 대상은 북한이 이미 수십 기를 확보해 놓은 것으로 알려진 핵탄두와 핵물질, 고농축 우라늄 지하 농축 시설이다. 미국이 이에 대한 신고를 요구하고 있는 데 반해 북이 이번에 내놓은 답은 너무나 미흡하다. 이래서는 지난 8월 말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로 중단된 미·북 비핵화 협상이 재개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비관적 전망이 나올 수밖에 없다.

비핵화 진도가 이처럼 지지부진한 데 반해 평양 선언에 담긴 남북 경협 조치들은 급발진을 앞둔 모습이다. 두 정상은 금년 내에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 했으며 또 조건이 마련되는 대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는 문제 등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이런 사업은 대북 제재가 해제되기 전에는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남측과 북측에서 각각 착공식만 갖는다면 그 자체로 제재에 저촉되지는 않을 것이며 '조건이 마련되는 대로'라는 전제를 단 것 역시 제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는 해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사업이다. 정부가 이 사업들을 정말 추진하고 싶다면 북핵 폐기가 실질적 실천 단계에 들어가도록 북측을 재촉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고대하던 '핵 신고'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문 대통령은 이달 초 인도네시아 언론 인터뷰에서 "올해 말까지 비핵화와 남북 간 평화 정착에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진도를 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평양 선언은 비핵화는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반면 남북 관계만 과속으로 앞서가고 말았다.

지난 4월 판문점 정상회담 때 김정은이 상징적이긴 하나 우리 측 지역으로 넘어온 데 이어 서울 답방까지 성사된다면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분단 후 처음으로 서울을 공식 방문한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정상회담이 남북 양측을 오가며 열리게 되면 관계 개선과 긴장 완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민족을 말살할 수 있는 북핵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김정은이 서울로 오게 된다면 우리 국내에서 상당한 반대 여론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김의 서울 방문 성사 여부도 결국 북핵 폐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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