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적자 한전, 세계 수준 공대 설립?

조선일보
  • 박세미 기자
    입력 2018.09.18 03:01

    상반기 1조1690억 순손실… 2022년 에너지 특화 대학 설립 밝혀

    지난 10일 한국전력은 한전 나주 본사에서 '한전공대 설립을 위한 용역 중간보고회'를 열고 '한전공대(KEPCO Tech· 가칭)' 윤곽을 발표했다. 청중 1000여 명이 몰릴 정도로 지역 관심이 뜨거웠다. 전남 지역에 세계적인 에너지 특화 대학인 한전공대를 설립하겠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하지만 교육계와 과학계에서는 "탈(脫)원전 정책으로 올 상반기에만 1조원 넘는 손실을 기록하며 6년 만에 최악의 실적을 낸 한전이 과연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대학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전의 누적 부채는 약 114조5700억원에 달한다.

    ◇학생·교수에게 파격적 혜택

    한전이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에게 제출한 한전공대 설립 용역 중간보고 자료에 따르면, 한전공대는 2022년 120만㎡ 부지에 에너지 관련 연구소 등과 함께 지어진다.

    한전공대 개요 외
    카이스트·지스트·유니스트 등과 같은 이공계 특성화 대학이지만, 한전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 공학 분야에 특성화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전체 학생 수는 학부 400명, 대학원 600명 등 1000명 안팎으로, 기존 5개 이공계 특성화 대학 가운데 가장 규모가 적은 디지스트(1400명)보다도 적다. 위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전남 나주시나 광주광역시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전은 보고서에서 미국 A사 컨설팅 내용을 인용해 "한전공대는 국가와 한전에 필요한 에너지 전문 인력을 제대로 키울 수 있고, 국가 균형 발전이란 측면에서 설립 타당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토지 비용을 제외하고 대학 설립 비용만 5000억~7000억원 정도 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은 보고회 때 학생과 교수진에게 줄 파격적인 혜택도 밝혔다. 학부·대학원생 1000여 명 모두 등록금이 면제되고, 기숙사도 무료다. 한전 입사 지원 시 가산점을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노벨상 수상자 등 '스타 교수'를 총장으로 모셔와 연봉을 미국 명문대 총장 수준인 약 10억원 이상 주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모든 교수에게 '다른 과기대 교수 평균 연봉의 3배(4억원) 이상'을 주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2022년 한전공대가 개교하면 2008년 중원대 이후 전국에 처음으로 세워지는 사립 4년제 대학이 된다.

    ◇"적자 1조원 회사가 대학을 세운다니"

    하지만 탈원전 정책 등으로 올 상반기 순손실만 1조1690억원을 기록한 한전이 과연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대학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은 작년 4분기부터 올 2분기까지 3분기 연속 영업 적자를 냈다. 올 상반기 영업 순손실은 2012년 이후 최대다. 이런 상황에서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일절 받지 않고 교수들에게 고액 연봉을 주며 대학을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지금처럼 적자와 부채 규모가 큰 상황에서 한전이 자기네 대학을 세우겠다는 건 정치적인 판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면서 "한전공대를 운영하면서 생기는 어마어마한 비용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이 손실을 줄이려면 전기료를 올리거나 흑자를 내야 하는데, 탈원전 정책을 펴면서 값비싼 석유·석탄·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을 늘리면 흑자 달성은 어렵다는 것이다.

    저출산으로 대학에 들어올 학령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데, 거꾸로 대학을 새로 설립하는 것도 앞뒤가 안 맞는다는 지적이다. 당장 후년에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학생 수는 올해보다 5만명 줄어든 47만812명으로, 올해 대입 정원(49만7218명)보다 2만명 적다. 교육부는 이대로 가면 3년 내 사립대 38곳이 도산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일부에선 카이스트(대전), 포스텍(포항), 지스트(광주), 디지스트(대구), 유니스트(울산) 등 과학 특성화 대학이 이미 포화 상태라고 지적한다.

    한 대학 관계자는 "모든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들이 한국의 MIT를 지향하는데, 지역별로 한국형 MIT를 다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재정 낭비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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