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조언'보다 또래의 '공감'이 더 좋아

조선일보
입력 2018.09.18 03:01 | 수정 2018.09.21 11:14

'죽고 싶지만…' '무례한…' 등 평범한 사람이 쓴 에세이 인기

백세희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출간 두 달여 만에 15만부 나갔다. 9월 둘째 주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기분부전장애(가벼운 우울증)를 앓고 있는 저자가 정신과 전문의와 12주간 나눈 대화를 엮은 책이다. 저자는 출판 편집자 출신의 평범한 28세 여성. 주제는 묵직하지만 내용은 일상적이다.

"참을 수 없이 울적한 순간에도 친구들의 농담에 웃고,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허전함을 느끼고, 그러다가도 배가 고파서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나 자신이 우스웠다. 지독히 우울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애매한 기분에 시달렸다."

어른의 '조언'보다 또래의 '공감'이 더 좋아
/일러스트=이철원
이런 담담한 고백에 20·30대 여성 독자들이 "어제 읽고선 위로받고, 오늘 다시 보고 힘을 내어 살아간다"며 열광한다. 딱 10년 전인 2008년 정신과 전문의 김혜남(당시 49세)의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가 그해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6위에 오르며 20대 후반~30대 초반 여성들의 '치유'를 담당했던 것과는 판이한 현상. 요즘 청춘들은 더 이상 '전문가'나 '어른'들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보다 또래 집단의 이야기로부터 '공감'을 얻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무명(無名) 에세이스트 백세희의 첫 책이 돌풍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올 상반기 교보문고와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꼽힌 정문정 에세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역시 같은 맥락이다. 처세술을 알려주는 책이지만 저자는 30대 초반이다. 직업은 대학생들을 위한 잡지의 편집장. 독자들보다 그다지 나이가 많지도 않고, 학벌이나 경력 등 이른바 '스펙'이 화려한 것도 아니다. 5년 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의 '린 인'이 회사에 올인하는 초엘리트 여성의 유리천장 뚫기 분투기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문정은 대신 이렇게 말한다. "회사의 명함을 자신과 동일시하다 보면 훗날 자신을 지켜주던 명함이 사라졌을 때 황망해진다." 책을 낸 가나출판사 서선행 차장은 "예전 독자들이 권위자의 조언을 듣고 자기 인생을 설계했다면, 요즘 독자들은 저자 스펙과 상관없이 자기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했다.

지난 6월 100만부 판매를 돌파한 이기주(41) 에세이 '언어의 온도' 역시 무명작가가 본인 명의의 1인 출판사에서 낸 책이 힘을 발휘한 케이스. 중년 남성이 썼지만 가르치려 들기보다 감성적 언어로 독자와 공감하는 자세를 취한 것이 여심(女心)을 낚아챘다는 분석이다. 김현정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베스트셀러 담당은 "요즘 2030들은 저자 '이름값'에 연연하지 않고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짤막하고 감각적인 글로 화제가 된 글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준다"면서 "주로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살아보고' 하는 말보다는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선호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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