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체크] 아파트단지 2~6㎞거리에 가축 273만마리… "악취 고통"

입력 2018.09.15 03:00

WSJ서 "국민연금 운용본부장 되려면 참아야" 꼬집은 전북혁신도시 실태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하려면 돼지 분뇨 냄새를 견뎌야 한다'고 보도했다. WSJ는 돼지 삽화까지 그려 넣으며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있는 전북혁신도시의 악취 문제를 꼬집었다. 기자는 지난 2014년 9월부터 전북혁신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당시 신혼집을 마련해 이사했지만 새집에 살게 된 기쁨은 며칠 가지 못했다. 바람이 불거나 흐린 날엔 정체 모를 악취가 풍겼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심해지는 악취에 잠을 이루지 못한 날도 있었다. 아파트 주민들 상당수가 같은 고통을 호소했다. 냄새는 서풍이 불 때 특히 심해진다. 오후 4~8시에 주로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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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너머 저 멀리 아파트 - 전북혁신도시에서 2.1㎞ 떨어진 김제시 용지면 들판에 돈사(豚舍)와 농가들이 흩어져 있다. 사진 가운데 보이는 아파트가 악취의 고통을 호소하는 주택단지다. /김영근 기자
냄새의 진원지는 기자가 사는 전북혁신도시 서쪽 경계에서 2.1㎞ 떨어진 김제시 용지면 축산단지다. 48만3000㎡에서 376농가가 모두 273만3611마리의 가축을 키운다. 닭이 248만1890마리로 가장 많고, 오리 11만4000마리, 돼지 11만1609마리, 소 2만6112마리 등의 순이다. 전북 지역에서 사육 두수로는 최대 규모다.

14일은 바람이 불지 않아 아파트로 냄새가 날아오지 않았다. 이날 오전 진원지인 용지 축산단지를 찾았다. 단지에 들어서기 1㎞ 전부터 고약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초입에 있는 자흥마을부터 축사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자 악취가 더 심해졌고, 중심부에 있는 신암마을에 이르자 코를 막지 않고는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신암마을에선 주로 돼지를 키운다. 통상 젖소나 한우 농장보다 돼지 농장에서 분뇨 냄새가 더 난다.

전북혁신도시는 국민연금공단, 농촌진흥청 등 12개 공공기관이 입주해 있는 지역 성장 거점이다. 지난 2014년 이주가 시작돼 지난해 11월 한국식품연구원이 마지막으로 이주를 마쳤다. 현재 정주 인구는 2만6500여 명이다. WSJ 기사에 지목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용지 축산단지에서 7㎞쯤 떨어져 있다. 이주 기관 직원들이 거주하는 아파트는 축산단지에서 2~6㎞ 거리에 모여 있다.

악취는 축산단지에서 6㎞ 떨어진 A아파트까지 난다. 이 아파트 엘리베이터엔 악취 민원 처리 현황 등을 주민에게 알리는 공고문이 붙어 있다. A아파트에 사는 박모(49)씨는 "4년 전부터 민원을 계속 넣었지만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 최모(46)씨는 "언론에서 자꾸 악취 문제를 이야기하니까, 집값이 하락하지 않을까 걱정이다"라며 "관계 당국이 나서 하루빨리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북도에 접수된 혁신도시 악취 민원은 올해에만 195건(8월 말 기준)이다. 지난해 81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발생한 악취 민원은 563건에 이른다.

1960년대 이후 조성된 용지 축산단지의 농장은 대부분 시설이 낡았다. 376농가 중 70곳(18.6%)만 현대화 시설을 갖췄다. 상대적으로 악취가 심한 돼지 농장의 경우 사육 농가 97곳 중 12곳(12.4%)만 현대화 시설을 갖췄다. 단지엔 가축 분뇨를 정화하거나 액비·퇴비를 만드는 시설도 11곳이나 있다. 이곳에서 하루 1104t의 분뇨가 처리된다. 악취 저감 장비 등을 갖추고 있지만, 축산 분뇨 원액을 대규모로 저장하고 있기 때문에 악취 발생을 원천적으로 막기 어렵다.

전북 혁신도시 악취 지도
전북도는 올해 악취 퇴치 사업에 6억4800만원을 투입했다. 우선 가축 분뇨 처리 과정에서 악취를 줄여 줄 수 있는 미생물 제품 650t을 농가와 폐수 처리 시설에 보급했다. 혁신도시 주민 20명으로 이뤄진 악취 모니터 요원도 운영하고 있다. 모니터 요원이 악취 발생 장소와 악취 강도를 신고하면, 행정기관이 배출 사업장을 점검하는 방식이다. 올해 68건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가 1개 시설을 고발 조치했고, 5개 시설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김호주 전북도 환경보전과장은 "악취를 없애기 위해선 수백억원을 들여 축사를 모두 사들이는 방법밖에 없다"며 "이는 전북도의 재정 상황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박비오 전북대 환경공학과 겸임교수는 "장기적으론 낡은 축사를 현대식 시설로 바꾸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용지 축산단지와 전북혁신도시 사이에 방취림(防臭林)을 조성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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