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눈으로 '콩알 표적' 명중… 스나이퍼들의 300m 전쟁

입력 2018.09.15 03:00

300m 소총 사격의 세계

300m.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였던 우사인 볼트가 30초 이상 전력으로 뛰어야 닿을 수 있는 거리다. 300m 소총은 육안으로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리 떨어진 표적지를 향해 총을 쏘는 사격 경기다. 고막을 때리는 총성이 터지고, 화약탄 냄새가 진동한다. 2~3시간에 걸쳐 경기를 치르고 나면 선수 주변엔 탄피가 수북하게 쌓인다. 전쟁 영화의 저격수를 뺨치는 각국의 명사수들이 진해에서 기량을 겨뤘다.

◇저격수들의 '배틀 그라운드'

2018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 장소인 창원국제사격장에서 차로 40분쯤 달리면 마봉산 기슭에 있는 진해 해군 야전사격교육장이 나타난다. 보안 문제 때문에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는다. 지난 12일 300m 소총 경기가 열린 이곳을 찾았다.

위병소를 통과하니 커다란 총성이 메아리쳤다. 10m 공기권총이나 '피슉'하는 공기소총의 발사음과는 데시벨 수준이 달랐다. 300m 소총 종목은 세계사격선수권에서만 치러지고 있다. 올림픽에선 1972 뮌헨 대회를 끝으로 폐지됐다. 경기를 치르는 데 여러 가지 난관이 있기 때문이다. 경기장을 확보하는 것부터 어렵다.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한국이 300m 사격장(진해·영천)을 갖추고 있다. 비용도 걸림돌이다. 300m 소총(스탠다드 종목)은 한 정당 약 1500만원이다. 200만원 남짓인 선수용 공기권총보다 7배 이상 비싸다.

300m용 소총을 1만~2만발을 쏘면 화약 탄환의 열기 때문에 총열이 미세하게 늘어나므로 800만원 정도를 들여 총열을 바꿔야 한다. 총알 역시 1발당 2000원으로, 선수가 하루 100발씩만 연습해도 20만원이 든다.

한국의 경우 300m 소총 종목 남녀 대표선수 6명은 모두 현역 직업군인이다. 윤덕하 한국 대표팀 감독은 "우리는 저격수를 키우는 군대가 있어 훈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종목의 강국은 총기와 탄환 전문 제조회사들이 있는 유럽 국가다. 이번 대회 300m 소총에 걸린 금 10개를 독일(금 3개)을 비롯해 7개국이 가져갔다. 한국은 금 1, 은 2개를 땄다. 북한엔 이 종목 선수가 없다. 만약 북한 선수가 이번 대회에 출전했다면 군 보안 시설인 해군사격장에 출입시켜야 하는 문제를 두고 조직위가 골머리를 앓을 뻔했다.

◇10점 표적은 '콩알 사이즈'

선수들은 입사(서서 쏴)·슬사(무릎 쏴)·복사(엎드려 쏴) 3가지 자세로 사격한다. 일체의 보조 장비 없이 맨눈으로 겨냥한다. 300m 밖에선 지름 100㎜인 10점 표적이 콩알만하게 보인다. 선수들조차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남의 표적을 겨냥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 10일 300m 복사에서 금메달을 딴 육군 하사 배소희(25)는 "막판까지 한 발 실수로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이 300m 경기의 묘미"라고 했다. 천민호(31·육군 중사)는 "우리가 스나이퍼처럼 총에 조준경을 달고 쏘면 1km 이내의 모든 물체를 정확하게 맞힐 수 있다"고 말했다.

야외 경기인 탓에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바람도 변수다. 탄환은 발사 후 0.3초 정도면 300m 표적에 맞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가지만 바람이 강할 땐 탄도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선수들은 바람 상황에 따라 '오조준'을 할 때가 있다. 눈썹 사이에 빨간 도장 같은 흉터를 지닌 선수도 많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총의 반동 탓에 가늠자에 미간을 찍히곤 한다. 12일 남자 300m 스탠다드 종목 단체전 은메달을 딴 최영전(37·육군 상사) 은 "이명과 난청, 요통 등을 직업병으로 달고 살지만 우리가 '진짜 사격'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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