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없어도 善한 삶 살 수 있다

조선일보
  • 이한수 기자
    입력 2018.09.15 03:00

    세계적으로 無종교자 비율 증가, 가난·불안한 나라가 종교인 많고
    풍요롭고 안정될수록 무종교적… "종교 없으면 타락한다"는 건 편견

    종교 없는 삶

    종교 없는 삶

    필 주커먼 지음|박윤정 옮김|판미동
    420쪽|1만8000원

    종교를 비난하는 책은 아니다. 다만 종교 없이도 건강한 삶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종교 없음' 현상을 연구하는 미국의 사회학자다. 이 책에 앞서 '신 없는 사회(Society Without God)' '더 이상 신앙은 필요 없다(Faith No More)'를 썼다.

    미국은 대통령 당선자가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는 '신의 나라'이지만 최근 '종교 없음'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적 태도가 되고 있다. 1950년대 미국인 중 종교 없는 사람은 5%에 불과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8%에 머물렀다. 무종교 비율은 2000년 이후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01년 14%, 2013년 19%, 최근 조사에서는 30%로 치솟았다. '종교 없음' 현상은 세계적 추세다. 캐나다 30%, 프랑스 33%, 네덜란드 40%, 노르웨이 45%, 체코는 61%가 신을 믿지 않는다. 한국에서 종교 없는 사람은 56.1%(2005년 통계)로 종교 있는 사람보다 많다.

    걱정할 일은 아니다. 무종교인이 많은 사회가 오히려 더 건강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자메이카와 덴마크가 극명한 사례다. 개신교와 가톨릭 신자가 대부분인 자메이카 국민은 정기적으로 교회에 가고, 기도를 자주 하며,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많다. 반면 덴마크는 기독교 문화를 갖고 있지만 무종교 쪽으로 기울어 있다. 국민들은 교회에 잘 나가지 않고, 기도도 거의 하지 않고,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종교성 측면에서 볼 때 자메이카는 종교적인 나라이고 덴마크는 무종교적인 나라다. 그런데 자메이카는 세계에서 가장 폭력적인 사회인 반면 덴마크는 폭력이 가장 적다. 자메이카의 살인율은 10만명당 52명, 덴마크는 10만명당 1명도 되지 않는다.

    무종교는 최근 가장 급성장하는 종교적 태도이다. 종교 없이도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미국 사회학자인 저자는 말한다.
    무종교는 최근 가장 급성장하는 종교적 태도이다. 종교 없이도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미국 사회학자인 저자는 말한다. /Getty Images Bank
    단지 하나의 사례가 아니다.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나라일수록 종교성이 강하고, 부유하고 안정적인 나라일수록 무종교적인 경향이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가난하고 정정(政情)이 불안한 아이티, 엘살바도르, 콜롬비아, 라이베리아, 짐바브웨 등은 종교성이 강한 나라다. 반면 높은 수준의 풍요와 평화를 누리는 노르웨이, 뉴질랜드, 호주, 일본 등은 무종교성이 더 강하다.

    개인도 비슷한 경향이 있다. 종교적 성향이 강하면 대체로 편견도 강하다. 종교적으로 강경한 사람일수록 인종차별 성향도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9·11 테러 직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테러 행위 혐의가 있는 죄수의 고문을 허용했다. 2009년 조사에 따르면 종교성이 강한 미국인일수록 고문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았고, 무종교성이 강한 미국인은 정부의 고문 허용 정책을 대체로 반대했다.

    종교 없는 사람은 도덕적이지 않을 것이란 명제는 편견에 불과하다. 도덕적 준거를 굳이 외부(신)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 인간은 타인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일 때 더 좋은 결과가 있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안다. 내면의 성찰을 통해 관용과 배려의 정신을 배운다. 기원전 600년쯤 작성된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에는 '다른 사람에게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고 적혀 있다. 비슷한 시기 공자(기원전 551~479)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고 했다. 저자는 이런 '황금률'이 무종교인의 도덕적 준거이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신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무종교 개인과 사회의 건강성을 입증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종교가 없는 개인과 사회라고 해서 타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가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정한' 종교인에 대해선 높이 평가한다. 사고로 여덟 살 아이를 잃은 무종교인 엄마가 말했다. "알지도 못하는 이웃이 기독교인이라면서 찾아와 아들을 잃은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어요. 그들은 마음이 따뜻하고 공감을 잘해줬어요. 종교 없는 사람들 사이에선 그런 게 전혀 없었습니다." 원제: 'Living the Secula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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