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경찰관 시위

조선일보
  • 이명진 논설위원
    입력 2018.09.15 03:16

    2011년 국가 부도 위기가 닥친 그리스는 온통 시위판이었다.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쳐대는 시위대 틈에 폴리스(police) 마크를 단 제복 차림 경찰관들도 끼어 있었다. 시위대 맞은편에선 방패와 헬멧으로 무장한 경찰이 깔려 도로를 차단하고 행진을 막았다.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진압 경찰과 시위 경찰이 대치하는 풍경이었다.

    ▶경찰노조가 보편화된 유럽에선 경찰관 시위가 드물지 않다. 많게는 수천 명씩 참여해 봉급 인상, 장비 현대화 같은 요구를 한다. 비번인 경찰이 그렇게 시위를 하면 당번인 경찰이 나와 질서 유지를 한다. 경찰의 노조 가입률은 다른 직종보다 높고, 유럽경찰노조협의회라는 기구도 있다. 미국에서도 경찰노조가 종종 가두 시위를 벌이거나 단체로 꾀병을 부려 출근을 늦추는 '태업 시위(blue flu)'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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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먹고사는 일 때문에만 시위하는 것은 아니다. 2년 전 프랑스 경찰 수천 명이 전국 60곳에서 동시 다발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정부의 노동법 개정에 항의하는 과격 시위대가 경찰차에 불을 지르고 쇠파이프로 경찰을 공격해 수백 명이 다치자 경찰관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폭력 시위 더는 못 참아!' 하며 시위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그제 한국의 젊은 경찰관이 경찰청 앞에서 제복을 입고 1인 시위를 했다. '불법과 타협한 경찰청'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최근 경찰이 세월호 시위대에 청구했던 8900만원 손해배상을 포기한 데 항의했다. 이 경찰관은 경찰 내부망에도 '대통령 임기는 5년이지만 우리가 포기한 권리는 20년 지나도 못 찾을 것'이라고 썼다. 과거 일부 경찰관이 수사권 조정이나 정치인 막말에 항의해 1인 시위를 했다. 그렇지만 이번처럼 경찰 지휘부에 맞선 시위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 나름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최근 10년간 불법 폭력 시위는 400차례가 넘는다. 그 시위에서 경찰 2000명이 다쳤다. 올 들어 전국에서 7월까지 3만7400여건 시위가 벌어져 지난해보다 60% 가까이 늘었다. 불법 폭력에 대한 책임은 끝까지 묻는 게 법치국가다. 그런데 정권 바뀌었다고 시위꾼들은 '민주 투사' 대접을 받고 있다. 법 집행하던 경찰은 범죄자 취급을 받거나 조직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경찰이 재판에서 이긴 손해배상도 취하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얼마 전 폭력 시위를 막은 죄로 재판을 받는 동료들을 위해 경찰 2000명이 1억원을 모았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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