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 정상회담 전야의 걱정스러운 풍경들

조선일보
입력 2018.09.15 03:18

남북이 개성 공동연락사무소의 문을 연 14일 미국이 대북(對北)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미 재무부는 북한 IT 인력 국외 송출과 관련해 북한인 1명과 중국·러시아 소재 기업 2곳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미 재무장관은 그러면서 "북한 비핵화를 달성할 때까지 제재를 철저히 집행하고 이행할 것"이라고 했다. 연락사무소 개소식 당일에 미국에서 대북 제재 조치가 발표된 것은 우연이라고 넘길 일이 아니다. 이날 미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미국의소리(VOA) 방송도 대북 협상을 담당했던 전직 관료들의 입을 통해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미국은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며칠 후면 (공동연락사무소로) 남북이 24시간 365일 소통하는 시대가 열린다"고 공언한 바로 그날에도 대북 제재를 발표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연락사무소 개소를 서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비핵화가 실질적인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남북 관계에만 가속 페달을 밟는 우리 정부에 보내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정부가 남북 관계에 속도를 내고 싶다면 다음 주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으로부터 비핵화에 대한 가시적인 조치를 끌어내는 데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식의 상투적인 말의 약효는 이미 사라졌다. 수십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북의 핵무기를 없애고 핵시설을 폐기하는 실질적이고 본격적인 행동이 나와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남북 관계는 순풍에 돛 단 듯 질주할 수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앞둔 분위기는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회담은 북한의 비협조로 날을 잡지 못하다 회담을 4일 앞둔 이날에야 벼락치기로 열렸다. 북이 기본적인 일정 확정에도 이렇게 애를 먹이는데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를 하려고 할지 의문이다. 북은 연락사무소 소장을 누가 맡을지 알려주지 않아 우리 쪽 소장인 통일부 차관은 개소식에 가서야 자신의 카운터파트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북이 이렇게 상식 밖으로 나와도 한국 정부는 눈치만 보며 끌려 다닌다. 북이 싫어하는 비핵화 얘기를 제대로 꺼낼 수 있겠나. 어쩌면 이번 정상회담이 북핵 폐기의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이 기회를 흘려보내고 대북 경제 지원만 나열하고 끝나면 곧바로 한·미 간의 균열이 본격화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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