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북 사업'에 국민이 봉인가

조선일보
입력 2018.09.15 03:20

통일부가 2008년 금강산 관광 중단과 2010년 5·24 조치로 손해를 본 남북 경협 기업 95곳에 국민 세금 1228억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그 이유를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인들을 위한 국가의 책임성 차원'이라고 했다. 책임이란 말에는 과거 정부의 잘못된 대북 정책에 따른 피해를 인정한다는 뜻이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금강산 관광 중단은 북한군이 우리 관광객을 총으로 쏴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고, 5·24 조치는 천안함 폭침에 대응한 것이다. 관광 중단과 5·24 조치를 불러온 모든 잘못은 북한이 저지른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마치 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던 양한다.

2011년 법원도 5·24 조치로 피해를 본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정부가 고의 또는 과실로 손해를 끼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2015년 대법원도 '정부 위법 행위로 볼 수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정부의 이번 '배상금' 지급은 법원의 판단을 뒤집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식이면 재판은 무엇 하러 하나. 사법부가 최종 결정을 내린 사안을 마음대로 무력화시키는 정부가 '사법 정의'를 말한다.

북한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행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도 이들에게 강제로 북한에서 사업하라고 하지 않았다. 북한이 어떤 집단인지, 북한에서 사업하는 것이 어떤 위험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북한에 가서 사업을 하겠다고 자원한 것은 '고위험'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얻겠다고 모험에 뛰어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북한에서 돈을 벌면 제 돈이고, 북한의 도발로 손해를 보면 우리 정부에 책임지라고 한다. 결국 국민 세금 내놓으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어디에 있나. 왜 국민이 민간 기업의 모험 투자 결과를 책임져야 하나. 개중에는 관광객을 사살하고 우리 군인을 떼죽음시킨 북한이 아니라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돈이 중요하다고 해도 나라와 안보가 먼저다.

이런 행태에 정부가 장단을 맞춘 것은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이다. 앞으로 대북 사업에서 손해가 나면 모두가 국민 세금 내놓으라고 달려들 것이다. 만약 정부가 '북의 도발로 손해 나도 국민 세금으로 메워줄 테니 안심하고 북한에서 사업하라'는 신호를 주려는 것이면 아예 국민을 봉으로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 논리라면 사드 배치 결정으로 중국의 보복 피해를 본 기업과 개인들도, 미국의 대(對)이란 경제 제재 동참으로 손해를 본 국내 기업들도 국민 세금을 지원받아야 한다. 국민 세금은 눈먼 돈이 아니다. 아무리 정권을 잡았다 해도 결코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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