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턱수염 기른 기장 비행정지 처분은 부당…내국인 역차별"

입력 2018.09.14 18:13

/아시아나항공
항공사가 턱수염을 기른 기장에게 '용모가 단정하지 않다'며 비행정지 처분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지난 1997년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한 베테랑 기장 A씨는 2014년 5월부터 턱수염을 길렀다. '종교적인 이유와 신념' 때문이었다. 세 달가량 턱수염을 기른채 비행을 하던 A씨는 같은해 9월 12일 김포공항 승무원 대기실에서 한 임원과 마주쳤다.

이 임원은 A씨의 상사 B씨에게 전화로 'A씨가 턱수염을 기른다'고 알렸다. B씨는 A씨에게 면도할 것을 지시했다. 아시아나항공의 내부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면도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B씨는 당일 A씨의 비행업무를 정지시켰다. A씨는 며칠 뒤 B씨에게 "회사 규정상 내국인은 수염을 기르지 못하고 외국인은 허용이 되는데 차별에 수긍할 수 없다"며 "수염을 기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신체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다. 종교적 이유로 기르는 것일 뿐 다른 불순한 목적은 없다"는 내용의 상황설명서를 제출했다. B씨는 질문 항목을 만들어 A씨에게 보냈으나 A씨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후 A씨가 면도 지시를 따르지 않자 B씨는 A씨의 스케줄을 다른 기장으로 대체했다. A씨의 비행 업무가 풀린 것은 그가 수염을 깎고 또 다른 팀장급 직원 C씨를 만나 "규정을 지켜 수염을 기르지 않겠다"고 말한 뒤였다. A씨가 비행 업무에서 배제된 기간은 29일이었다. 감봉 1개월 처분도 받았다.

A씨는 같은해 12월 비행정지가 부당한 인사처분이라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냈고, 재심에서 구제명령을 받았다.

이에 아시아나항공은 A씨가 적법한 용모규정을 위반했고, 상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것은 징계사유에 해당한다며 부당비행정지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통상적으로 국내외 항공사들은 항공 운항의 안전을 확보하고 고객으로부터 만족과 신뢰를 얻는 데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범위에서 직원들에게 제복을 착용하게 하는 등 복장이나 용모에 대해 일반 기업체에 비해 많은 제한을 가하고 있다"며 "아시아나항공 역시 직원들의 복장이나 용모에 대해 일반 기업체보다 훨씬 폭넓은 제한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이 판결은 2심에서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턱수염을 기르지 못하도록 규정한 아시아나항공의 용모규정은 내국인 직원들에게만 적용함으로써 '국적' 기준으로 차별하고 있다"며 "헌법과 근로기준법이 규정하는 평등 원칙을 위배해 무효"라고 했다. 아시아나항공이 내부 규정의 단서 조항을 통해 외국인에게는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염을 기를 수 있도록 한 점과 대한항공의 경우 내국인 기장도 수염을 기르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은 점 등이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아시아나항공은 승무원이 수염을 기르는 경우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다"면서도 "수염을 기른 내국인 승무원이 외국인 승무원에 비해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 대해 이를 뒷받침할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아시아나항공 소속 외국인 기장 137명 중 20명이 수염을 기르고 근무하고 있었는데, 불만을 접수한 고객은 없었다.

대법원도 "아시아나항공의 내부 규정은 영업의 자유를 넘어서 A씨의 일반적 행동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며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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