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익명으로 토해내는 울분에 '공감' 눌러주세요

조선일보
  • 이혜운 기자
    입력 2018.09.15 03:00

    타인의 위로 받을 수 있는 소셜미디어 앱 인기

    위로받고 싶지만
    일에 지치고 사람에 지쳐 감정 털어놓고 싶은 2030

    남들이 아는 건 싫어
    일기장에 쓰긴 쓸쓸하고 인스타·페북은 부담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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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이철원
    #1. 20대 대학생 박모씨 :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혼자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나니, 외롭고 답답한 감정을 털어놓고 싶었다. 전 남자 친구는 같은 학교 선배.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다면 많은 사람이 공감해주겠지만, 그들 입방아에 오를 것이다. 그렇다고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에 글을 쓰는 건 쓸쓸했다. 위로가 필요했다.

    #2. 30대 직장인 김모씨 : '이 XXX 같은 나쁜 X. 내가 회사를 때려치우든지 해야지.'오늘도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이 말은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밤새워 작성한 기획안을 던지는 팀장 앞에서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퇴근하려는데 동료가 술이나 한잔 하러 가자고 꼬드긴다. "오늘 화난 건, 오늘 풀어야지?" 나도 풀고 싶다. 상사 욕을 하며 취할 때까지 마시고 싶다. 그런데 이상하게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를 상사가 다 아는 것 같다. 이번 주말에도 상사와 동료는 골프 약속이 잡혀 있다. 그냥 집으로 왔다. 이 울분을 어디에 쏟아 내야 내 마음이 좀 더 편해질까.

    한 달 넘게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인 에세이의 제목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기분부전장애(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와 불안장애를 겪어온 백세희씨가 썼다. 이 책에는 '고슴도치 딜레마'라는 심리 상태가 나온다. 서로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적당히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욕구의 공존이다. 사람들은 늘 혼자이고 싶으면서 혼자이기를 싫어한다.

    '타인의 공감' 앱 인기

    관태기(관계 권태기)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우리의 감정은 누군가에게 위로받아야 다스려질 만큼 늘 위태롭다. '타인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소셜미디어 앱들이 젊은 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소셜미디어의 소통 문화는 시대별로 조금씩 확장됐다. 1990년대 다모임·아이러브스쿨 등은 동창끼리, 2000년대 초·중반 싸이월드는 '일촌'이라 불리는 지인까지 확대됐다면, 2000년대 후반 트위터·페이스북·인스타그램에서는 지인의 지인을 포함한 관계로 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생활 문제, 관계의 피로 문제가 증가했다. 이제는 익명, 완전한 타인에게서까지 공감을 받으려는 세대의 출현인 셈이다.

    대표적인 앱이 '어라운드', '마리레터', '밤편지', '감쓰(감정의 쓰레기통)' 등이다.

    '어라운드'는 기존 소셜미디어와 가장 비슷하다.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듯 내 감정을 그대로 쓰면 된다. 이렇게 쓴 글은 주변 사람들에게 익명으로 공유되고, 그 글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하트 무늬 공감 버튼을 누르고, 익명으로 댓글을 남긴다. 한 사용자는 "우울증까진 아닌데 그 비슷한 상태가 몇 년씩 지속됐어요. 평소에도 힘이 없고, 무기력하고 그랬는데, 어라운드 시작하고 3일 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게 느껴져요. 위로든 고민이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격려하고 공감하는 게 매번 큰 힘이 돼요"라는 글을 남겼다.

    '마리레터'는 수익의 일부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게 기부하는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회사 '마리몬드'에서 만든 앱이다. 자신의 고민을 올려놓으면 '마리라이터'로 지정된 사람들이 위로의 말을 건넨다. 마리라이터는 희망자 중 내부 심사를 거쳐 선발하며, 자원봉사자 형태로 운영한다.

    '감쓰'는 자신의 감정을 일기장에 쓰듯 쏟아내면 감정청소부라는 시스템이 맞춤형 대답을 해주는 앱이다. 예를 들어, 감정칸 '우울'을 표시하고 "우울해"라고 쓰면, 감정청소부는 "저는 이럴 때 초콜릿이 당기더라고요"라는 대답이 나온다. 남긴 글은 정해놓은 일정 기간(1일~10년 중 선택)이 지나면 자동 삭제된다. 애플 앱 스토어 관계자는 "감쓰는 1200원을 내야 하는 유료 결제 앱이지만, 라이프스타일 부문 다운로드 순위에서 5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밤편지'는 내 솔직한 감정을 담은 편지를 보내는 것. 타인에게도 보낼 수 있지만, 지인에게도 보낼 수 있다.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 등으로는 충분히 내 마음을 전달하기 어려울 때 사용한다. 지난달 27일부터는 희망자 중 선정해 사연을 읽어주는 팟캐스트 '밤편지 우체국'도 운영하고 있다.

    기존 소셜미디어의 쇠퇴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존 소셜미디어의 전망은 어둡게 나타나고 있다.

    광고 플랫폼 전문기업 'DMC미디어'가 지난 6월 발표한 '2018 소셜 미디어 이용 행태 및 광고 접촉 태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 가입 현황을 묻는 설문에 페이스북의 경우 응답자의 85.5%만 가입되어 있다고 답해 전년보다 3.3%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스타그램도 응답자의 67.8%가 가입돼 있다고 답해 지난해보다 0.9%포인트 하락했다. 응답자들의 '하루 평균 이용 시간'도 35.5분으로 집계돼, 지난해 조사보다 7.4분 줄었다. 오영아 DMC미디어 선임연구원은 "최근 소셜미디어는 정보 유출, 가짜 뉴스, 지나친 광고 등의 논란이 끊이지 않아 이로 인한 이용자들의 피로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소셜미디어의 종주국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6일 시장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인 4500명의 응답자 가운데 26%가 페이스북 앱을 삭제했다. 특히 18~29세 사용자 중 44%가 앱을 삭제해 젊은 층 이탈이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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