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벌에 쏘이고 튄 돌에 살 찢기고… 벌초 베테랑 손도 벌겋게 부어

조선일보
  • 용인=안영 기자
    입력 2018.09.15 03:00

    추석 앞두고 벌초 동행 해보니

    본지 기자(맨 왼쪽)가 지난 11일 용인시산림조합 소속 작업 대원들과 함께 봉분의 잡초를 깎아내는 ‘벌초 도우미’ 체험을 하고 있다. 굉음을 내는 엔진을 등에 메고 예초기를 잡으면 기계 끝 부분 톱날이 돌며 수풀을 깎아낸다. 작업을 함께 한 대원들은 70대 마을 어르신, 오랜 벌초 베테랑들이었다./용인=장련성 객원기자
    추수를 앞둔 농촌 마을 초입, 예초기와 갈퀴가 수북이 쌓인 트럭에 몸을 실었다. 가을 바람을 가르며 밭 사이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10분쯤 들어가자 산 중턱으로 문중 묘 대여섯 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곧 추석, '벌초 시즌'이다. 추석 연휴를 두 주 앞둔 지난 11일 오후, Why?는 경기도 용인시의 한 묘역을 찾았다. '벌초 도우미'다.

    우선 풀독을 예방하기 위해 두꺼운 장화를 꺼내 신었다. 돌이 튈까 봐 플라스틱 무릎 보호대를 착용했다. 휘날리는 풀에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안면 보호구를 썼다. 고무를 코팅한 작업용 장갑을 끼며 노출된 피부를 가렸다. 직전에 본 마지막 뉴스의 제목은 '벌초하던 50대 성묘객, 벌에 쏘여 사망'. 과잉이라 놀림받아도 할 수 없다. 뱀, 벌, 풀독, 뾰족한 돌 모서리, 날카로운 예초기 톱날까지, 위험 요소 대비한 안전 장비 착용이 우선이다.

    드디어 준비 끝, 일꾼 셋이 예초기를 둘러메고 산등성이에 올랐다. 요란한 굉음을 내는 엔진을 등에 업고 호스로 연결된 예초기를 잡으면 기계 끝부분에 달린 위잉 돌아가는 톱날이 풀숲을 날렵하게 깎아낸다. 키 높이까지 우거진 수풀을 베며 진입로 만들기 30여분, 산 중턱 무덤 두 기 앞에 도착했다. 흩어진 비석들 앞으로 봉분마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잡초들이 자라 있었다. 일꾼 한 명이 먼저 바닥을 쓸듯 풀밭을 정리했다. 이윽고 비석 앞이 멀끔해지자 예초기 날을 세워 봉분의 잔풀을 다듬기 시작한다. 편평한 바닥은 수평으로, 경사진 곳은 노면과 같은 각도로. 베테랑의 손길이 닿자 무덤은 이발을 마친 듯 단정한 모습을 드러냈다.

    벌초 도우미는 70대 어르신

    "올해는 날이 유난히 더워 풀이 웃자랐어. 이런 해는 두 배로 힘들지. 예년엔 안 그랬는데…."

    산림조합 소속 작업반장 신정협(70)씨는 벌초 경력만 올해로 20년째. 추석 때마다 벌초를 대행해왔다. 용인시 산야는 훤하게 꿰뚫어본다는 터줏대감이다. "밭에서 나고 자라 농사일이 익숙하다"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힘든 일 안 하려 한다"고 혀를 찬다. "어쩔 수 없이 나이 먹은 우리가 계속 맡다 보니 애꿎은 경력만 십수 년 늘었다"고 허허 웃던 그는 노련한 솜씨로 질긴 칡뿌리를 베어냈다. 이따금 예초기를 거꾸로 들어 호스에 섞여든 엔진 연료를 톡톡 털어내고, 깎아낸 풀들을 갈퀴로 쓸어 담으며 묵묵히 수풀을 헤쳐나간다.

    "하다 보면 많이 다쳐. 벌에 쏘이기도 하고, 돌이 튀어서 살이 찢어지기도 하고."

    그는 바짓단을 들어 올려 돌에 긁힌 상처를 보여주었다. 예초기 톱날이 종종 풀 사이사이 숨어 있는 돌덩이와 부딪히면 톱날이 튀고 파편이 흩어지기도 한다. 운 나쁘면 맨살이 긁히기 십상. 무릎부터 종아리를 온전히 덮는 플라스틱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는 이유다.

    꽁꽁 싸맨다고 부상을 아예 막을 수는 없다. 장갑을 벗으며 보여준 손등은 벌겋게 부어 있었다. 그는 "말벌에 쏘이면 장갑이 안 벗겨질 정도로 붓는다"며 "올해처럼 덥고 비가 안 오면 벌집이 많아져서 벌에 쏘일 일도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벌초의 진화, GPS-이력 관리 시스템

    "요즘 같은 시즌엔 주말도 없이 아침 8시부터 작업을 시작해요. 하루 온종일 묘역 다섯 곳 정도를 벌초합니다. 한 곳만도 두어 시간은 족히 걸려서요."

    용인시산림조합 김진태 주임은 최근 늘어나는 일감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했다. 용인시산림조합 앞으로 예약된 작업량은 봉분 200기 정도. 전국의 산림조합 142곳의 작업량을 합치면 3만5000기가량이라고 했다. 김 주임은 "5년 전엔 2만 1000기 정도였던 작업량이 작년엔 3만1000기까지 늘었다"며 "벌초를 위탁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벌초 비용은 봉분 한 기당 8만~13만원. 벌초 대행 서비스에 산림조합뿐 아니라 지역농협, 조경업체, 장묘업체까지 가세했다. 업체별로 거리와 면적, 무덤 개수대로 비용을 산정하는 기준까지 마련돼 있다.

    물론 직접 벌초하는 집이 아직은 많다. 각 지역 집성촌에선 연례행사처럼 합동 벌초하는 풍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일 년에 한 번, 일가친척이 모이는 자리다. 위탁을 꺼리는 데엔 비용 문제도 한몫한다. 연휴 한 달 전부터 벌초를 고민하던 장모(35)씨는 "종중 묘 8기를 한꺼번에 벌초해야 해서 비용이 부담된다"며 "부대비용까지 합하면 100만원이 훌쩍 넘을 것 같아 예초기를 대여해 직접 벌초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2000년부터 19년째 벌초 대행업을 해왔다는 묘지기닷컴 김태흠 대표는 "올해는 경기가 안 좋아 매년 부탁하던 단골들도 직접 벌초하겠다고 돌아서는 경우가 늘었다"고 했다.

    2017년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화장률은 82.7%. 1994년 20.5%였던 것에 비해 20여년 만에 네 배 이상 증가했다. 다섯 집에 네 집은 화장인 셈. 이에 따라 벌초 산업도 변화하고 있다. 외형을 확대하고 다변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종합 묘역 관리 서비스'로 진화 중이다. 지역농협 관계자는 "최근 벌초 대행 서비스는 단순히 벌초뿐 아니라 잔디 보수, 훼손지 복구, 나무 식재, 석조물 설치까지 '통합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림조합중앙회 김소정 주임은 "GPS (위성항법장치)를 이용해 묘역 사진을 실시간으로 검색하는 시스템과 상담·견적 산출·관리 내역까지 저장해두는 묘지 이력 관리 체계를 구축했다"고 했다. 변화하는 장묘 문화의 2018년 현재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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