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시대를 앞서간 위대한 교육자… 그가 쓴 '스승' 15만부나 매진됐다

조선일보
  • 김동길 단국대 석좌교수·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18.09.15 03:00

    [김동길 인물 에세이 100년의 사람들] (41) 오천석(1901~1987)

    [김동길 인물 에세이 100년의 사람들]
    일러스트=이철원
    해방이 되고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우리나라에는 민주 교육을 위한 삼총사가 건재하였다. 이 박사 세 분은 국민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큰 스승이었다. 성함은 백낙준, 김활란, 오천석인데 나는 그분들을 '민주 교육을 위한 삼총사'라고 부르고 싶다. 이번에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오천석은 평안남도 강서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동경에 가서 청산학원 중등부에 입학하였다. 그는 거기서 장차 이 나라의 유명 인사가 될 문인을 여럿 만났다. 문학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기에 이광수, 김동인, 주요한, 전영택 등을 사귀게 되었다. 학교 공부보다는 도쿄 간다에 있는 헌책방을 뒤지며 닥치는 대로 문학작품을 읽었다. 그래서 학교 성적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무난히 졸업은 하였다. 바로 그해 3·1운동이 터졌고 그의 삶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그는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남을 위해 사는 교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오천석은 인생의 황혼기라는 70대에 접어들어 '외로운 성주'라는 책을 한 권 썼다. 자서전이다. 그런데 이 자서전에는 제 자랑은 한마디도 없고 그저 자기가 못난 사람이라는 넋두리뿐이다. 그래서 이 회고록은 재미있다. 흥미진진하다. 하도 재미있어서 읽다가 도중에 접을 수가 없다. 그는 자기 자신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세상에 남길 만한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황혼을 맞이했다고 뉘우치지만, 이 나라에 오천석만큼 성공한 교육자가 누가 있는가. 그의 부친은 강서에서 서울로 올라와 감리교신학교를 졸업하였고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전도를 위해 일본에 파송되었다. 그래서 아들을 일본에 데리고 가서 공부시킬 수 있었다.

    그 뒤 지방 감리사로 발탁된 그의 아버지는 한국을 대표하여 미국 감리교 총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때 오천석의 유학을 도와주겠다는 미국 목사 한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오천석은 미국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아이오와의 시골 마운트버넌에 자리 잡은 코넬 대학의 캠퍼스는 꿈의 나라처럼 아름다웠다. 이 학교에서 그는 졸업을 앞두고 '파이 베타 카파(Phi Beta Kappa)'라는 전 미국 우등생 모임의 회원으로 뽑혔다. 우리 동포 중에서는 남가주대학을 졸업한 신흥우와 오하이오 웨슬리언대에 다닌 김활란과 하버드에서 수학한 하경덕 등 수재들만이 회원으로 뽑힌 모임이다. 오천석은 그래도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우길 수 있을까.

    그는 미국에 가서 10년 고생을 했는데 2년은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중노동을 하였다. 그러나 노스웨스턴에서는 1년 만에 석사 학위를, 컬럼비아에서는 3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은 재사를 '평범한 학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미군정 문교부장을 지냈고 제2공화국에서는 문교부 장관이 되었다. 대한교육협회 회장, 유엔 총회 한국 대표 등을 역임한 천원(天園) 오천석을 그 누구도 평범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은 일찍이 '위대한 것은 이해되기 어렵다'는 말을 남겼거니와 나는 그가 자기 자서전 제목을 '외로운 성주'라고 붙인 까닭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천석은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였기 때문이다. 그가 컬럼비아를 찾았을 때 민주 교육의 태두 존 듀이는 이미 은퇴하고 없었지만 기라성 같은 그의 제자들이 컬럼비아를 지키며 미국의 교육계를 휘어잡고 있었다.

    오천석이 공부를 마치고 조국 땅을 다시 밟았을 때가 1932년이었는데, 오랜 세월 해외에 나가 있던 그를 아는 사람도 몇 없었고 그가 발붙일 직장도 찾기 어려웠으나 다행히도 보성전문의 김성수가 불러서 기회를 주어 몇 년 그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러나 점차 일제가 심하게 교육을 규제하였기에 그의 학문적 이상을 구현하지는 못하고 한동안은 영어밖에 가르칠 과목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천석이 1972년 발간한 '스승'이라는 책자는 출판되자 15만부가 팔렸다는데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교사로 살아온 나의 한평생을 크게 반성하였다. 그는 그 책의 서문을 기도로 시작하였다. 교사라는 천직은 십자가를 질 각오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그는 강조하였다. 그 책은 모든 교사가 마땅히 읽어야 할 책이다. 나도 읽었지만, 전교조 조합원들도 빠짐없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개정판을 내면서 문교부 장관을 지낸 제자 정원식이 그 스승을 흠모하는 간절한 심정을 간행사에 털어놓았다.

    민주 교육의 삼총사 백낙준은 민주주의를 위해 젊은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쳤고 김활란은 민주 정신으로 여성 교육에 전념하여 세계 최대 여자대학을 하나 만들었다. 오천석은 그 모든 민주 교육의 확실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그 삼총사의 활약이 없었던들 대한민국의 교육이 오늘과 같은 틀을 마련할 수 있었을까? 그의 이름 '천석'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주석 지팡이가 되라는 뜻으로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그의 아호 '천원'은 하늘나라의 꽃동산을 가꾸는 아름다운 일꾼이 되라는 뜻이다. 87년 동안 그는 흔들림 없이 그 외길을 걸었다. 돈과 명예를 멀리하고! 스승의 십자가를 혼자 지고! 오늘도 하늘나라의 꽃밭을 가꾸고 있을 '천원'의 그 부드러운 미소가 무척 그리운 초가을 아침이다. 다시 한 번 그 웃는 얼굴을 보고 싶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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