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소리는 들리는데 말이 안들린다

조선일보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18.09.15 03:00 | 수정 2018.09.15 04:02

    [김형석의 100세 일기]

    [김형석의 100세 일기]
    작곡가 김동진은 내 중학교 선배이다. 일 년에 한두 차례씩 모교에서 만날 때마다 내가 찾아가 인사를 드려도 반갑게 대해주지 않았다. 청각이 나빠졌기 때문에 거리를 두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후배인 것을 모르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한 번은 내가 옆자리에 가 앉으면서 "제가 후배입니다" 밝혔더니 그다음부터는 마음 놓고 선배 행세를 했다.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고, 차 옆자리를 권하기도 했다. 나도 선배의 사랑을 받는 것 같아 기뻤다. 안타까운 것은 귀가 몹시 어두워졌기 때문에 애태우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에 내 청각에도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왼쪽 귀에는 보청기를 쓰는 것이 좋겠다고 의사가 권했다. 땅콩 알 정도의 크기인데 그 값이 대단했다. 보청기를 끼면 소리는 커지는데 2~3년 지나니까 음성만 커지지 말의 내용은 구별이 잘 안 된다. '소리는 들리는데 말이 안 들린다'는 단계까지 약해진 셈이다. 최고의 보청기는 두 손을 귀에 대고 듣는 자세다.

    청각의 약화는 삶의 자긍심을 위축시키는 것 같다. 상대방의 발음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음성을 밖으로 내뿜는 사람의 얘기는 들리는데 안으로 말을 삼키는 사람의 얘기는 듣기 힘들었다. 청각이 약한 어르신을 모시고 산 사람은 내 나이를 배려해 큰소리로 말을 해준다.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상대방 처지는 아랑곳없이 혼자서 긴 얘기도 한다. 심지어는 "50년 전에 찾아 뵌 일이 있는데 기억하시겠느냐"고 묻는다. 그런 인사를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나에게만 속삭인다. 50년 젊었어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의 작은 목소리다. 내 한 친구는 "지금 여러분이 하는 얘기를 저는 듣지 못합니다. 용서하세요"라고 선언한 후에는 자기 일만 했다. 때로는 나를 모시러 온 손님이 차를 운전하면서 뒷자리에 있는 나에게는 관심도 없이 혼자 얘기를 한다. 내가 아무 대답도 안 하면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할 수 없이 "좀 피곤해서 쉬고 싶었다"고 양해를 구한다. 그럴 때는 100세가 되는 노인을 위해서는 사전 교육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이다. 청중 앞자리에 앉아 강단으로 올라갈 차비를 하고 있는데 한 젊은 여성이 다가왔다. 진행을 맡은 직원이다. 내 귀에 대고 다급히 무어라 속삭이더니 사회자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때는 정말 당혹스러웠다.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하고 싶었을 터인데 자기 말만 남기고 떠났기 때문이다. 강연을 마치고 무슨 중요한 부탁이었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 강연을 듣고 싶어 이렇게 많이 모였다는 얘기였다.

    그렇다고 강연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용만 충분히 전달되면 만족할 수 있고 질문은 따로 받으면 된다. 아쉬운 점은 한 가지다. 김동진 선배께 내가 후배 노릇을 했듯이 옆에서 도와주는 후배나 비서가 있으면 좋으련만. 그럼 한 해 더 강연으로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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