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서른살 호돌이와 호돌이 아빠

조선일보
  • 권승준 기자
    입력 2018.09.15 03:00 | 수정 2018.09.15 04:05

    [권승준 기자의 한방] 88 서울올림픽 30년… 호돌이 만든 김현 디자인파크 고문

    [권승준 기자의 한방]
    30년 전 서울올림픽의 공식 마스코트 ‘호돌이’는 이 사람 손끝에서 탄생했다. 한국 디자인업계의 대부 중 하나로 꼽히는 김현 디자인파크 고문은 호돌이를 시작으로 청와대, 헌법재판소, LG그룹, BC카드, 청정원 등 주요 정부기관과 대표 기업들을 상징하는 로고 작업을 맡았다. 그의 포트폴리오가 현대 한국의 발전사를 압축해 놓은 듯하다. / 김지호 기자
    이름: '호돌이'. 직업: 88서울올림픽 공식 마스코트.

    30년 전인 1988년 9월 17일 서울올림픽 개막식. 이 귀여운 호랑이에게 주어진 임무는 막중했다. 무명에 가까운 극동의 분단국가가 주최하는 올림픽에 전 세계의 시선은 의심 반, 우려 반이었다. 개막식부터 반전(反轉)이 필요했다. 한국이 초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치러낼 역량이 있을까. 마스코트가 시작이었다. 1984년 미국 LA올림픽 마스코트인 독수리 '샘'이 혹평을 받은 뒤라 부담은 더 컸다.

    [권승준 기자의 한방]
    결론부터 말하면 호돌이는 대성공이었다. IOC뿐 아니라 여러 외신이 서울올림픽을 '역대 최고의 올림픽'이라 평가했고, 호돌이는 더 큰 사랑을 받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미국 MSNBC뉴스의 조사에서 호돌이는 최고의 올림픽 마스코트 3위로 꼽혔다. 서울올림픽에서 한국이 거둔 성적은 4위였다.

    호돌이는 서울올림픽 5년 전에 탄생했다. 호랑이라는 정체성과 호돌이라는 이름은 국민 공모로 결정됐지만 사실 출생의 비밀이 있다. 진짜 아빠의 직업은 당시 대우그룹 기획조정실(2부) 제작과장. 한국 디자인업계의 대부(代父)로 꼽히는 김현(69) 현 디파크 브랜딩 고문이다. 서울올림픽 30주년을 며칠 앞둔 지난 4일, 서울 성북동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사무실은 꿈동산이었다. 호돌이는 물론, 1993년 대전엑스포 마스코트 '꿈돌이', 한화이글스·LG트윈스 등 프로스포츠구단 마스코트는 물론 청와대·한국은행·헌법재판소 같은 정부기관과 LG·국민은행·BC카드·청정원을 비롯한 기업 로고까지 김 고문의 '자식'들이 가득했다.

    ―호돌이와 꿈돌이의 아빠가 같은 줄 몰랐습니다. 포트폴리오가 '대한민국 성장사'네요.

    "호돌이 덕을 많이 봤죠. 대우그룹에서 독립해 제 회사를 창업한 후 처음 맡은 일도 프로야구 빙그레이글스 마스코트였어요. 개인적으로 꿈돌이는 안타까운 경우입니다. 호돌이가 많이 받았던 비판이 '자로 대고 그린 것 같이 딱딱하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손으로 그렸는데(웃음). 그 때문만은 아니지만, 꿈돌이 담당 디자이너는 지금 부산 K대학교 정한경 교수였습니다. 손으로 그린 듯한 느낌으로 만들었죠. 캐릭터의 코와 입, 팔까지 없애는 과감한 시도를 했고. 엑스포가 끝나면서 거의 잊혔어요."

    ―호돌이 선정 과정이 궁금합니다. 경쟁자가 고(故) 신동우 화백 같은 쟁쟁한 분들이었다던데.

    "호랑이로 마스코트를 만들기로 결정한 뒤 올림픽 준비위에서 저와 신 화백 등 7명을 지명해 경쟁을 시켰어요. 전문가 추천을 받은 것만으로도 저는 영광이었습니다. 낮에는 회사 일을 해야 하니, 주경야독이었죠. 퇴근해서 미친 듯이 자료를 수집하고 스케치를 했습니다. 호랑이만 다른 모습으로 300장은 그렸을 겁니다. 3개월을 씨름해도 안갯속이었는데 '일은 마감이 한다'더니 마감 며칠 앞두고 기적같이 감이 잡혔어요."

    ―결정적인 돌파구라면.

    "호돌이가 쓴 상모죠. 한국의 정체성을 입히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한복을 입히면 호랑이 줄무늬가 가려지니 안 되고, 갓을 씌워도 영 느낌이 안 살고. 그러다 상모를 떠올렸죠. 무엇보다 상모에 달린 끈이 아주 유용했습니다. 정적인 마스코트에 역동적인 느낌을 주고, 서울의 S자로 그려서 상징성도 드러낼 수 있었거든요."

    ―당선된 호돌이와 수정을 거친 최종본이 좀 다르더군요.

    "올림픽 준비는 국가 역량을 총결집하는 자리였습니다. 호돌이도 제가 그린 것을 토대로 각계 전문가들이 해준 조언을 받아 5개월간 수정 작업을 했어요. 창경궁 동물원장님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호랑이는 귀엽게 그리면 고양이와 구별하기 어렵거든요. 눈이나 코의 크기, 모양 같은 부분을 세세하게 일러주셨죠."

    ―당시 디자인업계에서 '공모전의 제왕'으로 불렸는데 호돌이 당선까지 80여 회 수상하고 공모전 은퇴 선언을 했다면서요.

    "더 중요한 얘기가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국립 경기공업고등전문학교·현 서울과학기술대) 1학년 때부터 공모전에 응모했는데 내리 35번을 떨어졌습니다. 아버님 사업이 기울어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이었어요. 상금을 받아 살림에 보태고 싶었는데 떨어지기만 했습니다. 학교에선 이론을 배우는데 공모전은 실전입니다. 당선작과 비교하며 '이렇게 하면 떨어지는구나' 하는 경험을 쌓은 거죠."

    [권승준 기자의 한방]
    1983년 공모 당시 김현 디자인파크 고문이 제출했던 ‘호돌이’ 원안(왼쪽)과 전문가들의 수정 작업을 거친 최종본. 원안이 부드럽고 귀여운 느낌이라면 최종본은 더 기하학적이고 힘찬 모습으로 바뀌었다. / 김현 제공
    김 고문의 인생사는 한국의 성장사와 겹친다. 서울서 태어난 그는 가세가 기울면서 "학비라도 아끼자는 생각"에 경기공업고등전문학교에 진학했다. 1963년 만들어진 경기공전은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의 기술자 양성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만든 5년제 학교로, 고등학교와 대학교 과정을 합친 것이었다. 토목, 건축, 기계 등을 아는 기술자를 속성으로 길러내 압축 성장을 뒷받침하던 제도였던 셈. 김 고문은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공예과를 선택했다"고 했다.

    ―첫 직장이 대우그룹이었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나 같은 디자이너를 가장 많이 뽑은 곳이 제약회사였습니다. 신문에 약 광고가 제일 많이 실리던 시절이었거든요. 처음엔 작은 개인 회사에 취업했다가 운 좋게 디자인업계 선구자인 서울대 조영제 교수님과 연이 닿아 그 연구소에서 일했습니다. 1년 정도 일하다 대우그룹이 대대적으로 디자이너를 뽑을 때 추천받아 입사했죠. 대우 김우중 회장이 조 교수님의 경기고 2년 후배였는데, 회사에 디자인팀을 제대로 짜보고 싶다며 교수님에게 부탁했었거든요. 1976년이었습니다."

    ―당시 대우 디자인팀 황금 콤비였던 윤호섭 국민대 교수는 '정말 미친 듯이 일했다'고 회고하시더군요.

    "윤 교수님이 사수고, 제가 부사수였죠. 입사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그룹 PR 시리즈 광고였어요. 신문 1면에 '대우 가족'이란 제목으로 기업 이미지 시리즈 광고를 낸 거죠. 당시로선 획기적이었습니다. 카탈로그나 달력 제작도 큰일이었습니다. 그땐 달력이 최고의 선물이었거든요. 대우그룹 첫 카탈로그를 만드는 데 1년이 걸렸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계열사가 늘어나 있었거든요. 한국기계가 기진맥진하니까 '임자가 경영을 잘하니 해봐'라고 김우중 회장님에게 맡기면, 다음 날 대우중공업이 생기는 식이었죠. 그렇게 회사가 성장하니 카탈로그도 계속 바꿔야 했고요(웃음)."

    ―기조실 소속이라 김우중 회장과 얽힌 에피소드도 적지 않을 텐데요.

    "워커를 신고 회장실 야전침대에서 주무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회장님은 야전사령관이었고 회사는 매일 전쟁을 치렀죠. 대우가 새한자동차를 떠맡고 광고를 일본 최고의 광고회사 '덴쓰'에 맡기려고 한 일이 기억나요. 도쿄의 덴쓰 본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그 회사 중역들이 아침 9시부터 발표했죠. 점심시간이 되니 도시락이 나왔어요. 김 회장님이 '자, 듭시다' 하면서 갑자기 이것저것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본인은 식사를 하시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덴쓰 중역들은 답하느라 저녁때까지 도시락 뚜껑도 못 열었습니다. 기선 제압이었던 거 같아요. 내가 당신들의 클라이언트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준 거죠."

    김 고문은 1984년 대우를 떠나 디자인파크를 창업했다. "대우에 불만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대우가 성장하니 디자인팀도 자연히 커졌고, 저도 어느새 관리자가 되어 있더라고요. 크리에이터로서의 삶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고민하던 차에 호돌이가 터지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김우중 회장님도 '잘해보라'면서 쿨하게 보내주셨죠."

    ―기억에 남는 '자식'들을 꼽아주신다면?

    "개인적으론 1989년의 BC카드 로고가 자랑스럽습니다. 클라이언트가 엄청 반대했어요. 붉은색 원 안에 BC라는 글자가 붕 떠 있는 모습으로 디자인했는데, 붉은색이 적자(赤字)를 떠올린다는 거예요. 붕 뜬 것도 불안해 보인다고. 소비자 설문조사도 하고 밀어붙여서 겨우 설득했는데, 정말 로고를 바꾸고 대박이 났습니다. 강렬하고 뇌리에 남잖아요. 가게에 들어가면 BC카드 로고가 제일 먼저 보인다는 반응이 많았죠. 반대하던 분들이 나중엔 '골프 홀인원 같아 보인다'며 좋아하시더군요(웃음)."

    ―럭키금성이 LG로 사명을 바꾸는 작업에도 참여했다면서요.

    "1990년대 들어서 한국 대기업이 사명이나 로고를 영어로 바꾸는 열풍이 불었습니다. 세계시장에선 '럭키금성'으로 영업하는 데 어려움이 많으니까요. 작고한 LG그룹 구본무 회장님이 처음 경영 일선에 나섰을 때 야구단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MBC 청룡을 인수하면서 LG트윈스가 된 거죠. 창단 첫해에 LG트윈스가 우승하면서 대박이 났습니다. LG로 해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심어준 거죠(웃음)."

    ―구본무 회장님과도 인연을 맺으셨나요.

    "거창하게 얘기할 건 아니고(웃음). 정말 소탈한 분이셨어요. LG트윈스 마스코트뿐 아니라 유니폼 디자인 등 구단 관련 디자인 전체를 우리 회사가 맡아서 회장님 모시고 야구장에도 자주 갔어요. 신기하게 제가 가면 LG가 늘 이겼어요. 연패에 빠지면 구 회장님이 전화해 '김 형이 안 오니 야구가 계속 지네' 하면서 저를 부르곤 하셨죠."

    ―'갑질'하는 클라이언트는 없었나요.

    "말도 못 하죠. 어떤 기업들은 일 맡겨놓고 계속 밥 사라, 술 사라고 압박하는 짓도 많이 했어요. 몇몇 디자인 회사는 정말 그런 기업들 잘못 만나서 파산할 정도였어요."

    은퇴작은 대한민국 정부 통합 상징이다.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부처별로 다르던 정부 상징을 하나로 통합하는 사업을 추진했고, 김 고문은 "이게 은퇴작"이란 생각으로 응모해 당선됐다.

    ―호돌이로 시작한 나랏일이 대한민국 정부 통합 상징으로 마무리된 셈이니 유종의 미인가요.

    "전혀 아닙니다. 정부 통합 상징은 너무 아쉬움이 많아요. 너무 빨리 추진됐고, 추진 과정도 졸속이었죠."

    ―어떤 점이….

    "정부 통합 상징이면 정말 온갖 것에 사용되는 겁니다. 문서나 휘장뿐 아니라 볼펜이나 머그컵 같은 기념품에도 들어가죠. '크기만 바꿔서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아닙니다. 각 용례에 따라 크기나 배경색 등 엄격한 룰이 필요합니다. 정부를 대표하는 상징이니까요. 우리는 일단 1년 정도 몇 개 부처만 시범적으로 사용하면서 문제점을 발견해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자고 했는데, 정부에선 그냥 발표해 버리고 다음 날부터 모든 부처가 이걸 쓰라고 지시했죠. 난리가 났습니다. 온갖 부처에서 로고 이미지 파일을 보내달라고 하면서 회사 전화통에 불이 났어요."

    ―최순실이 선정에 개입했단 의혹도 있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그건 알 수 없죠. 다만 김종덕 당시 문화체육부 장관이 우리가 작업한 여러 시안을 들고 대통령에게 결재를 받으러 청와대에 갔는데, 대통령은 못 만나고 비서실에 '두고 가라'는 말만 듣고 나왔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우선순위로 올린 로고가 아니라 후순위였던 시안이 내려왔어요. 물론 후순위 시안도 장점이 많긴 했는데, 색깔을 두 가지 쓴다는 점이 결정적 단점이었습니다. 로고에 색깔을 한 가지 더 넣을 때마다 예산이나 수정 과정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거든요. 선진국 중에서 색깔을 두 가지 이상 쓰는 나라는 독일이 유일한데, 독일 정부도 꽤 고생했어요."

    정부 통합 상징은 현 정부에서도 그대로 물려받아 쓰고 있다. 김 고문이 지적한 문제는 수정은커녕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 고문은 자신의 은퇴작을 두고 "지금도 잘못 쓰는 사례가 많이 보인다"며 "정부 차원에서 반드시 바로잡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수정 작업은 2~3년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진행해야 하는 반면, 공들인 만큼 티가 나는 작업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현 정부는 진짜 힘들고 어려운 일은 외면하고, 화려하고 생색나는 일에만 능숙하다고 비판한다. 이전 정부를 적폐로 보고 청산에 열 올리는 현 정부가, 정작 '적폐'로 보이는 통합 상징 수정 작업에 손을 놓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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