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번째 생일맞은 사법부… 대통령은 질책하고, 대법원장은 맞장구

입력 2018.09.14 03:08

[사법부 70주년] 文대통령 "촛불정신 염원 따라 前정권 사법농단 의혹 규명해야"
金대법원장 "적극 수사협조할 것"

13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중앙홀에서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행사엔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했다. 문 대통령이 행사장 안으로 들어오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한 발짝 뒤에서 따라 들어왔다. 김 대법원장은 문 대통령이 자리에 앉자 잠시 기다렸다가 착석했다.

이날 행사는 한국 사법부가 미 군정(軍政) 등 외부 권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적 재판을 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사법부에 지난 정권에서 벌어졌다는 '재판 거래' 의혹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문을 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에 화답하듯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다.

법원 안팎에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반응이 많았다. 대통령이 특정 사건에 관해 검찰과 사법부에 사실상의 지침을 내리고, 사법부 수장이 이에 따르겠다고 하는 것은 군사 정부에서도 보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야당에선 "제왕적 대통령의 면모를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왔다.

축사하는 文대통령 - 13일 문재인 대통령(사진 가운데)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축사에서 “촛불 정신의 염원에 따라 전 정권의 사법농단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축사하는 文대통령 - 13일 문재인 대통령(사진 가운데)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축사에서 “촛불 정신의 염원에 따라 전 정권의 사법농단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뉴시스

문 대통령은 이날 "지난 (박근혜) 정권의 사법 농단 의혹이 사법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며 "의혹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만약 잘못이 있었다면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연단 아래에는 문무일 검찰총장이 이 발언을 듣고 있었다.

검찰이 수사 중인 이른바 재판 거래 의혹은 아직 사실로 확인된 것이 없다. 확정되지 않은 의혹을 근거로 대통령이 사실상 검찰에 수사를 더 강도 높게 하라고 주문하고, 법원에는 수사에 협조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에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에 쌓여온 폐단을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지금 저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했다. 그는 "최근 사법부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여러 현안은 매우 참담한 사건"이라며 "사법부가 지난 시절 과오와 완전히 절연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안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문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의 확고한 생각"이라고 했다. 독립된 헌법기관이자 정권을 견제해야 하는 사법부가 대통령의 '적폐 청산' 지침을 받드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한 원로 변호사는 "제왕적 대통령이 삼권분립에 기초한 사법부 독립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발언을 했는데도 대법원장이 박수를 친 격"이라고 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사법부 내부 문제에 대해 이렇게 구체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10년 전인 사법부 60주년 행사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참석했지만 법원 내부의 일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사법부는 더욱 의연한 자세로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이 시대의 정의와 양심의 등불을 밝혀 달라"는 원론적 언급만 했다.

이날 문 대통령 축사에 대한 여야 반응은 엇갈렸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지적한 사법부 독립과 사법 개혁의 필요성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사법부의 자정 노력만을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사법부 '찬탈'을 넘어서 제왕적 대통령의 면모가 드러난 것"이라며 "대통령이 검찰에 이어 사법부까지 손에 넣고 맘대로 하겠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했다.

이날 행사는 대법원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점 등을 고려해 간소하게 치러졌다. 과거 기념식은 본관 1층 대강당에서 열렸지만 올해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로 2층 대법정 앞 중앙홀에서 비교적 작은 규모로 열렸다.

☞사법부 출범일

대법원은 ‘법원의 날’로 지정한 매년 9월 13일 사법부 출범 기념행사를 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은 1948년 8월 15일이다. 그날보다 뒤늦게 사법부 출범 행사를 하는 건 사법권을 미 군정으로부터 이양받은 날이 1948년 9월 13일이기 때문이다. 이날은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취임한 날이기도 하다. 정부 수립 이후 사법부를 만드는 데 필요한 법령 등 제도를 갖추는 데 시간이 걸려 출범이 늦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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