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길목… 水墨에 젖다

조선일보
  • 정상혁 기자
    입력 2018.09.14 03:00

    수묵 대가 '청전과 소정' 展 열려… 南道선 내달까지 '수묵 비엔날레'

    마음이 젖는다는 점에서 추경(秋景)과 수묵(水墨)은 동체라 할 수 있다. 가을 초입, 곳곳에 수묵화가 내걸리고 있다.

    한국 근대 수묵화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청전 이상범(1897~1972)과 소정 변관식(1899~1976)이 맨 앞에 있다.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오는 20일까지 열리는 '청전과 소정' 전에 대표작 20점이 선을 보인다. 특히 가을 풍취를 담은 '추경산수'가 다수 눈에 띈다. 교우였고, 경쟁자였던 두 사람의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한눈에 비교할 기회다.

    모범생 청전이 안정된 수평 구도에 얕은 한국의 언덕과 들판을 소재로 먹의 풍부한 깊이를 드러냈다면, 야인이었던 소정은 역동적 수직 구도의 산세와 기암절벽을 적묵(積墨)과 파선(破線)의 거센 필치로 잡아냈다. 일정한 율동의 붓질이 반복되며 노랗게 익어가는 산과 초목의 조화를 연출한 청전의 1958년 작 '추경산수'와 치솟은 바위의 음영이 꿈틀대는 소정의 1960년대 작 '외금강 삼선암'은 극명한 대조라 할 만하다.

    청전 이상범의 1960년대 작 '추경산수'(60.5×128㎝·왼쪽 그림)와 소정 변관식의 '추경산수'(130×128.5㎝).
    청전 이상범의 1960년대 작 '추경산수'(60.5×128㎝·왼쪽 그림)와 소정 변관식의 '추경산수'(130×128.5㎝). /노화랑

    풍경에 사람이 빠지지 않는다. 원근을 무시하고 도드라지는 그 인간의 형상이 계절의 서정성을 배가한다. 청전은 1959년 작 '추경산수'에 허물어진 고성(古城)의 색깔로 늙어가는 풀밭과 그 사이를 소 끌고 지나는 농부를 그려넣었다. 소정의 1960년대 작 '추경산수'는 안개처럼 흰 강에 배 한 척 띄운 채 낚싯대를 드리운 노인의 퉁퉁한 뒷모습을 담고 있다. 그 느린 보행과 낚시의 시간은 하염없으며, 이 때문에 그림에는 없는 새나 풀벌레, 피부에 내려앉는 마른 바람을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지금 수묵화는 화단의 가장자리에 있다. 국내 전시가 서양 현대 미술 위주로 고착화돼 관심에서 멀어진 탓이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발표한 '2018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결산' 자료에도 낙찰가 상위 20위권에 한국화는 없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이태호 서울산수연구소장은 "한국 문화의 낮은 위상을 고스란히 대변한다"면서도 "수묵화 계통의 전통 형식은 한층 인간적이고 친환경적"이라고 강조했다.

    수묵화 부흥을 위한 전시가 전국에서 잇따른다. 먼저 수묵을 주제로 한 국내 첫 국제 미술 행사 '2018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전남 목포·진도 일원에서 10월 31일까지 열린다. 현대 수묵의 재창조(목포), 전통 수묵의 재발견(진도)이라는 테마로 한·중·일 작가 266명의 출품작이 공개된다. 경기도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은 11월 18일까지 가을 기획전 '신금강산도(新金剛山圖)'를 연다. 북한 작가 선우영을 비롯한 수묵채색화가 22명의 '금강산도'를 통해 서양 중심주의를 벗어나 수묵채색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취지다. 미술관 측은 "2000년대 이후의 금강산도는 추상과 극사실주의 등 현대 수묵채색화의 여러 면모를 반영하고 있어 수묵화가 고루하다는 고정관념을 깨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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