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떠나는 날엔] [20] 오늘도 아내의 잔소리가 좋다

조선일보
  • 왕종근 아나운서
    입력 2018.09.14 03:00

    왕종근

    왕종근 아나운서
    왕종근 아나운서
    "재민아, 나 죽으면 굳이 제사 지내지 마라."

    지난 명절 아내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고 나면 저승에서 아주 잘 살고 있을 테니 번거롭게 이승으로 불러내지 말라는 얘기였다. 무슨 자신감에 저런 말을 하는가 생각해봤다. 아내는 결혼 후 남편과 아들, 가족만을 위해 살아왔다. 가족을 위해 누구 못지않게 최선을 다했으니 미련이 남지 않는단다. 그러나 나는 미련이 많다. 그래서 아들에게 "나는 부디 제사를 지내다오"라고 했다. 아직 아들 장가가는 것도 못 봤다. 내 일방적인 바람이지만 마누라는 매일 슬퍼하며 울 것이다. 무엇보다 전 국민이 시청하는 대형 프로그램 진행도 못 해봤다. 미련 남을 이유가 너무 많아 이승을 떠돌 것이다.

    하지만 나도 어느 새 예순네 살이라 한 달에 한두 건씩 꼭 주변에서 부고가 들려온다. 어떻게 살아야 미련이 남지 않을까 고민했다. 죽었을 때 뭔가 업적 하나가 뒤따라오면 미련이 덜하지 않을까. 곰곰이 내 업적의 순위를 매겨보는데 결과는 이렇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첫째는 아내에게 늘 꼬리 내리며 살아온 것이고, 둘째는 아들과 친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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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의 잔소리가 좋다. 오늘만 해도 같이 사우나를 다녀오는 사이에 "허리 좀 펴라"부터 시작해 "밥을 왜 흘리면서 먹느냐" "요즘 방송이 시원찮은데 책 좀 읽어라"고 끝없는 잔소리를 들었다. 하늘 같은 아버지에게 코웃음 치는 아들의 건방짐도 사랑스럽다. 지금은 해병대에 가 있어 자주 보진 못하지만, 가끔 방에 들어가 넌지시 조언을 건네면 "하!" 하는 콧소리와 함께 아들의 반박이 시작된다.

    군인이셨던 나의 아버지는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분이었다. 아버지 돌아가신 뒤 화장하는 날에 눈이 펑펑 쏟아졌다. 화장터에서 나온 유골을 품에 안았는데 아주 따뜻했다. 하늘 같고 차가웠던 아버지가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니. 그때 아버지처럼 속은 따뜻하지만 겉으로는 엄격한 가장이 되겠다 마음먹었다.

    그런데 천성이 낙천적이라 말에 권위라는 게 실리지 않나 보다. 아내도 아들도 자꾸 콧방귀를 뀌는 바람에 노선을 바꿔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됐다. 되돌아보니 그 일이 내 인생 가장 성공한 일이다. 말수 적던 아들은 이제 자기 비밀까지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아내와 티격태격하며 같이 돌아다니는 것이 인생의 낙이 됐다. 죽어서도 가족에게 따뜻한 남편과 아버지로 기억된다면 미련이 덜할 것이다. 훗날 아들은 내 유골을 품에 안으며 그 온도 차를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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