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기록할 만한 하루

조선일보
  • 소유정·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자
    입력 2018.09.14 03:00

    소유정·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자
    소유정·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자
    한 잡지에 연재 중인 어느 시인의 일기를 읽다 문득 나의 일기가 궁금해졌다. 지금 쓰고 있는 일기장이야 손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지만, 작년과 재작년 혹은 그보다 더 이전에 썼던 노트들은 책장에서도 가장 아래 칸에 꽂혀 있었다. 누가 보기라도 할까 봐 이런 곳에 둔 것일까, 아니면 나조차도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기억이 담겨 있기 때문일까.

    깊은 곳에서 꺼내 든 나의 일기장에는 다른 사람의 일기만큼 재미있는 내용은 없었다. 기록은 대개 비슷했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감상이거나 반가운 얼굴들을 만난 날의 감정, 또는 그날 읽은 책에서 옮겨 적은 문장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특별할 것 없는 일기 사이에도 두 가지 정도의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첫째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날의 기억은 구체적으로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과거의 내가 일기를 다시 읽을 미래의 나를 배려한 것이기도 했다. 그날 일기의 한 부분을 그대로 가져오자면, "다시 떠올려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쓰지 않기로 한다"(2017년 7월 16일)는 것이었다. 불쾌했던 날의 이유에 대해선 지금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날의 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둘째는 '오늘'로 시작하는 '어제'의 일기를 자주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미 자정을 훌쩍 넘겨 다음 날이 되어서야 남긴 일기는 유독 길었다. 아마도 오래도록 잠들지 못할 만큼 의미 있는 하루가 아니었을까. 지난 일기장을 다시 들춰 보며 기록할 만한 하루가 제법 많았다는 것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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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장장 15년 동안의 유고 일기를 남겼다. 현대소설의 시작이라 여겨지는 그가 오래도록 회자될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건 매일 기록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성실하게 쓰는 힘은 좋은 작품으로 이어진다. 이야기를 기다리는 빈 페이지를 보며 부지런히 쓰리라 다짐한다. 남은 2018년은 매일이 기록할 만한 날들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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