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힘 없어도 이길 수 있어"… 당돌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조선일보
  • 이태훈 기자
    입력 2018.09.14 03:00

    런던·뉴욕 거쳐 서울 온 '마틸다' 12일 첫 무대서 폭발적 매력 선봬
    나쁜 어른들에 맞서는 아이들 얘기, 非영어권 첫 공연… 내년 2월까지

    런던과 뉴욕을 휩쓸고 온 당돌한 아이들이 마침내 서울에 도착했다. 올 하반기 뮤지컬 최대 기대작 '마틸다'가 12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첫 공연을 선보였다. 한국 아이들에게도 인기 높은 영국 작가 로알드 달(1916~1990)의 소설 원작. 주인공 마틸다는 사기꾼 부모에게서 태어난 소녀다. 부모는 여자애가 책 읽는 건 시간 낭비라 윽박지르고 TV와 돈만 사랑한다. 설정상 나이는 영국 초등학교 입학 연령인 다섯 살. 하지만 부당한 일을 당하면 "옳지 않아요!"라 소리치고 음흉한 어른은 꾀를 내 골탕 먹이며, 폭력이 아닌 문자와 지식의 힘으로 끝내 스스로의 운명을 바꿔나간다.

    첫 공연 관객들은 뜨거운 반응으로 이 뮤지컬의 높은 완성도에 화답했다. 1막에서 사악한 교장 트렌치불(최재림)이 한 아이에게 거대한 초콜릿 케이크를 다 먹는 벌을 줄 때, 아역들의 노래와 군무에 객석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2막이 시작되고 천장에 매달린 긴 그네를 탄 배우들이 무대 앞 관객들 머리 위로 날며 '어른이 되면(When I Grow Up)'을 부르자 환호와 탄성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왔다. 트렌치불을 몰아낸 아이들이 강렬한 로큰롤 리듬에 맞춰 '반란의 아이들(Revolting Children)'을 합창하며 격렬한 춤을 출 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관객들은 머리 위로 손을 올려 박수를 쳤다. 무대에 즉각 반응하는 데 인색한 우리 극장에선 흔치 않은 풍경이었다.

    마틸다가 용기를 내 사악한 트렌치불 교장에게 맞서고 같은 반 아이들이 동참하며 부르는 노래 ‘반란의 아이들’은, 강렬한 로큰롤 리듬과 배우들의 군무가 빛나는 뮤지컬 ‘마틸다’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마틸다가 용기를 내 사악한 트렌치불 교장에게 맞서고 같은 반 아이들이 동참하며 부르는 노래 ‘반란의 아이들’은, 강렬한 로큰롤 리듬과 배우들의 군무가 빛나는 뮤지컬 ‘마틸다’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신시컴퍼니

    배우들의 연기는 명불허전. 이날 최정원은 특유의 넘치는 에너지로 춤바람 난 엄마 웜우드 부인을 연기했다. 얄미우면서도 귀여운 캐릭터였다. 악당 트렌치불을 연기한 최재림은 '킹키 부츠'의 스타 배우. 군복 같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규칙을 지키며 그어진 선 안에 머물라"고 아이들을 몰아붙이는 독재자였다가, 어느새 무릎까지 오는 스커트를 입고 등장해 노란 리듬체조 리본을 돌리며 무대 위를 통통 튀어 다녔다.

    아이들이 주인공이지만 주제 의식은 결코 가볍지 않다. "조그맣고 힘이 없어도 용기를 내면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마틸다의 노래 '똘기(Naughty)'는 "세상엔 승자와 패자가 있을 뿐이며 너희는 영원히 패자"라고 윽박지르는 트렌치불의 대사와 맞물려 이 이야기를 단순한 소녀의 영웅담에서 개인의 자존, 사회적 약자의 패배 의식,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는 신념에 관한 이야기로 한 차원 끌어올린다. 아역 배우들은 놀라움 그 자체다. 카랑카랑한 발성 덕에 대사와 노래의 메시지는 한 단어씩 콕콕 날아와 관객의 가슴에 박혔다. 이날 마틸다를 연기한 이지나(10)양은 가족에게 학대당하며 부르는 노래 '침묵(Quiet)'의 혼란스러운 내면 표현부터, 아빠를 골탕 먹이며 부르는 노래 '똘기'의 당돌함까지 막힘없이 표현했다.

    '빌리 엘리어트'를 한국 무대에 옮겼던 뮤지컬 제작사 신시컴퍼니 작품. 비(非)영어권에서 처음 공연되는 마틸다를 통해 영어의 운율을 재치 있게 한국어로 옮겨 살려내고, 언어적 특성을 무대 장치와 노래에 조화롭게 활용하는 제작 능력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천장이 높은 공연장의 장점을 잘 살린 액자형 무대 역시 런던 코벤트가든의 케임브리지 극장보다 더 화려했다.

    영국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가 '레미제라블' 이후 25년 만에 만든 대극장 상업 뮤지컬. 영국에서 올리비에상 사상 최다 7개 부문, 미국선 토니상과 드라마데스크상 각 5개 부문을 수상했다. 공연은 내년 2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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