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출산 성장이 '소주성'의 대안?

입력 2018.09.14 03:14

최연진 정치부 기자
최연진 정치부 기자

지난달 자유한국당 초·재선 의원 모임에서 갑자기 '출산 주도 성장'이란 말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공무원 증원에 들이는 막대한 예산을 출산 장려에 쓰면 좋지 않겠느냐'는 아이디어 차원의 얘기였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김성태 원내대표는 당내 재선 의원과 논의를 거쳐 지난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 출산 주도 성장론을 집어넣었다. 측근들은 "논리가 탄탄하지 않아 발표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했지만 김 원내대표가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연설에서 "지난해 출산 마지노선인 출생아 수 40만이 무너진 데 이어 올해 출산율이 1.0 이하로 떨어지는 비상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며 "출산 주도 성장을 제안한다"고 했다. 그러자 정치권에선 '철학 없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당에서도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일부 의원은 "출산 주도 성장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말이냐"고 되물었고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약칭 소주성)에 빗대 급조한 개념 아니냐"는 뒷말도 나왔다.

저출산 문제는 심각한 국가 현안이고 자칫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인구 문제와 성장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인 것도 맞는다. 김 원내대표 주장대로 아이 한 명당 성년까지 1억원을 준다면 출산율을 높이는 데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저출산 대책은 될지언정 소득 주도 성장 대신 경제성장을 견인할 대안(代案)으로 내놓기엔 설익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출산과 성장을 억지로 이어붙인 것 같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상당수 정당에선 "여성과 여성의 출산을 성장의 도구 정도로 여긴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어떻게든 출산을 늘리면 성장할 수 있다'는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가 이런 비판을 자초했다.

더구나 한국당은 그동안 민주당의 아동수당, 청년수당 등에 대해 '세금 퍼주기'라고 비판해 왔다. 소득 주도 성장도 '세금 중독 성장'이라고 몰아세웠다. 김 원내대표는 '한국당의 기조가 선별적 복지 아니었느냐'는 지적에 "저출산 같은 국가적 재앙을 극복하기 위해선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당 안에서조차 "'소득이 늘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소득 주도 성장의 단순 논리를 차용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당은 '출산 주도 성장 TF'도 만들겠다고 했다. 즉흥적으로 '출산 주도 성장'을 제시했다는 비판에도 당의 공식 정책으로 밀고 가겠다는 태도다. 이래선 청와대와 여권이 소득 주도 성장을 고집하다가 고용·분배 악화를 초래한 전철(前轍)을 그대로 밟을 것이다. 정책은 의지나 아이디어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한국당이 책임 있는 공당이 되려면 정책 하나하나에 더 치열한 고민과 현실 인식을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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