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7] 가을엔 책보다 전쟁을 떠올린 中國

조선일보
  •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18.09.14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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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반구의 가을은 목가적이다. 푸르렀던 식생이 빨강, 노랑, 갈색으로 변하면서 맑고 높은 하늘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경치에 젖었다가 바람에 흩날리는 추풍낙엽(秋風落葉)을 바라보며 감상에도 빠져든다.

    계절의 변화에서 시간의 덧없음을 떠올리는 정조(情調)는 한반도와 중국이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중국의 대지에는 특별한 감성이 하나 덧붙여진다. 전쟁에 뒤따르는 조바심이다.

    우선 천고마비(天高馬肥)의 성어를 보는 시각차가 뚜렷하다. 우리는 이 성어 뒤에 하나를 더한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이다. 맑고 높은 가을 하늘에 말도 살을 찌우니, 등불을 가까이해서 책 읽으라는 권유다.

    하지만 이 성어를 만들어 낸 중국의 원전은 엉뚱한 뜻을 가리킨다. 바로 전쟁이다. 북방의 드넓은 초원에서 여름의 풀을 잔뜩 먹어 살을 찌운 말이 넘어온다는 얘기다. 북방 유목 제족(諸族)의 침략을 지칭한다.

    원전에서는 추고마비(秋高馬肥)로 적었다. 시기는 북송(北宋) 때다. 북방의 금(金)나라가 곧 쳐들어올지 모르니 전쟁에 대비하자는 한 대신의 간언에서 나왔다. 따라서 예전 중국에서는 가을에 책을 잡는 대신 남부여대(男負女戴)로 피란길에 올라야 마땅했다.

    오래전부터 중국 북방은 침략의 근원이었다. 특히 수확의 계절이 닥치면 북방의 유목들은 줄곧 남쪽으로 말을 달려 침략 전쟁을 벌였다. 당(唐)대에 본격 펼쳐져 명(明)대까지 이어졌던 가을 전쟁 대비 작업인 '방추(防秋)'는 아예 제도로 자리 잡을 정도였다.

    추후산장(秋後算帳)이라는 중국 성어도 있다. 가을걷이 뒤에 제대로 따져보자는 얘기다. 속뜻은 오래 벼르다가 기어이 보복에 나서는 행위나 의도다. 역시 가을을 그 시기로 선택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줄곧 전쟁으로 다져진 중국 문명의 특징이 드러나는 대목들이다. 중국인은 그렇듯 늘 싸움과 대응의 방략(方略)을 중시한다. 가을이면 독서를 우선 떠올리는 한반도의 인문(人文)과는 달라도 퍽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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