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국 언론에 조롱당한 벌판 속 국민연금

조선일보
입력 2018.09.14 03:18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1년 넘게 공석인 이유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리적 불리함 때문이라는 기사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렸다. 신문은 세계 3위 규모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 기금본부장은 '돼지 분뇨 냄새'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며 삽화까지 그려 넣었다. 국민연금공단이 있는 전주시 전북혁신도시에서 올 들어 155건의 악취 관련 민원이 신고됐다는 것이다. 전 국민의 노후를 책임진 국민연금이 외국 언론의 조롱거리가 됐다.

'분뇨 냄새'는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엉뚱한 위치에 대한 지적이다. 세계 10대 연기금이 모두 수도나 금융 허브에 있지만 유일하게 한국 국민연금공단은 서울에서 약 200㎞ 떨어진 벌판에 서 있다. 전주 시내까지 차로 30분 걸리고, 버스를 보기 힘들 만큼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인근 상가들은 비어 있는 곳이 많고 공터에는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다고 한다. 이런 곳에 글로벌 차원에서 635조원을 굴리는 기금운용본부가 있다는 것이 외국 언론 눈에도 황당하게 보였을 것이다.

작년 초 기금운용본부가 이곳으로 옮기면서 핵심 인력이 계속 이탈하고 있다. 본부장은 물론이고 본부장 아래 실장급이 줄줄이 나가면서 고위직 8곳 중 3곳이 공석이다. 278명 정원이지만 현재 근무 인력은 246명으로 정원도 못 채우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의 다른 조직은 지역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금운용본부만은 금융 중심지에 있어야 한다. 운용본부는 인력이 200여 명에 불과해 지역 발전과는 사실상 상관이 없다. 그런데 '몇 백조원을 굴린다'는 얘기가 퍼지자 '알짜배기다' '무조건 끌고 와야 한다'는 압력이 커졌다. 결국 지역 정치인들이 예외 없는 이전을 밀어붙이고 대통령 후보가 공약까지 했다. 기금운용본부 200여 명이 전주로 가서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 것이 무엇이 있나. 이런 코미디가 없다. 국민연금의 올 상반기 수익률은 0.9%에 그쳐 정기예금 금리만도 못했고 국내 주식 수익률은 마이너스 5.3%에 달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다른 금융 공기업의 지방 이전도 추진하겠다고 한다. 금융에서 우수 인력이 이탈하고 국익에 해가 돼도 지역에서 표만 얻으면 그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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