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 性차별하나]④자식은 아빠姓? '원조' 중국은 40년 전에 폐지

입력 2018.09.13 16:00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들이 가장(家長)이 되는 ‘호주(戶主)제’는 2008년 폐지됐다. 법 개정에 앞서 헌법재판소는 2005년 "성역할에 기초한 차별로 정당한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라며 호주제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호주제와 함께 부계혈통주의의 또다른 한 축인 ‘부성(父姓)원칙’은 여전히 우리 법에 남아 있다.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부장(법학 박사·사진)은 "호주제 폐지 당시 부성원칙에 대한 논의도 있었지만 현재까지 관습, 사회 혼란 등을 이유로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며 "자식이 태어나면 당연히 아버지 성을 따라야 한다는 부성원칙은 가정 내 평등을 요구하는 헌법에 반한다"고 말했다. 조 부장은 "부성원칙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어른이라는 의식을 갖게 만드는 남성중심주의의 뿌리"라고 했다.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법률구조부장.
-10년 전 호주제를 폐지하면서 부성원칙은 아예 손을 안 댄 것인가.
"부성원칙도 한 차례 개정돼 지금에 이른 것이다. 10년 전에는 무조건 아버지 성을 따라야 하는 부성강제주의였다. 다만 당시 문제인식은 부성주의 자체가 아니라, 이를 강제하면서 예외를 두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헌법재판소도 부성을 따르는 것이 개인의 권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문제 없다고 판시했다.
민법 개정 후 이제는 부부간 혼인신고시 합의를 했거나, 아버지의 사망, 이혼, 입양 등 특별한 경우에 성을 바꿀 수 있게 됐다. 사망, 이혼시에는 법원이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허용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아버지 성을 따르라고 하고 있다. 법이 남성과 여성을 구별짓는 성차별이라고 생각된다."

-부성원칙이 낳은 폐해가 있나. 갑자기 바뀌면 혼란스러울 것 같기도 하다.
"법이 의식을 규정한다고 한다. 아버지 성을 따라야 한다는 원칙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법으로 부성을 따르라 하는 것은 남성중심적 사고이고, 이로 인해 차별 의식이 생겨난다. 가정 내 문제이지만 사회적 효과가 크다.
폐해로는 미혼모 사례를 들 수 있다. 여성이 홀로 아이를 낳고 이 아이는 어머니 성을 따라 사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아버지가 내 자식이라며 인지 신고를 하면 아이는 부성원칙에 따라 자동으로 아버지 성을 따르게 돼 있다. 물론 아버지 성을 따른 뒤 성본변경허가신청을 내 법원 판단을 받아야 한다. 재판 결과는 보통 어머니 성을 그대로 따르라고 나온다. 다만 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결론이 나기까지 미혼모 가정은 정신적으로 상당한 고통을 받는다. 법적인 보완장치는 있지만 부성원칙 때문에 오히려 혼란을 주는 경우다"

-아버지 성(姓)을 따른다고 아버지가 우월하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는데 쉽게 동의가 안된다.
"그렇다. 어느 교수님 말로는 남성 교수들끼리 이야기할 때 우스개 소리로 아내에게 용돈 받아 쓴다며 자기 집에서는 아내가 더 세다고 말한다. 보통은 아버지 성을 따랐다고 해서 어머니를 우습게 보지 않는다. 다만 부성원칙을 따르면 은연 중 우리 인식 속에 남성우월주의가 자리잡게 된다. 못느끼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부성원칙이 독소 조항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뿌리내린 전통인데 꼭 바꿔야 하나. 가족 체계나 문화가 복잡해 질 것 같다.
"사회가 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부장적인 가족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던 사회 모습은 오늘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부계혈통주의는 조선 후기 본격적으로 확산됐는데, 그 때와 오늘날 가족의 모습은 다르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 정보화사회로 바뀌었고, 대가족보다는 핵가족이 보편화됐다. 가족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하는 권위주의적인 조직이라기 보다는 구성원 모두가 존중되는 민주적인 관계로 변화했다."

2007년 12월 부산지법 판사들이 호주제가 폐지되고 개인별 가족관계등록제도가 신설되는 것을 내용으로하는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을 알리기 위해 거리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조선DB
-일반 국민들 인식은 어떤가. 부성원칙을 폐지해도 될만큼 준비가 됐을까.
"제도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인식이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고 본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올해 3~4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68%(2234명)가 ‘부성원칙은 불합리하다’고 답했고, 2013년 똑같이 실시했던 설문 때는 62%(4252명)가 ‘불합리하다’고 응답했다. 5년 동안 부성원칙이 현실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연령대로 나눠 봐도 젊은 20~30대뿐만 아니라 50~60대도 불합리하다는 의식이 확대됐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부계혈통주의의 뿌리에는 중국이 있지 않나.
"우리나라에 부성원칙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배경에는 중국에서 유입된 성리학 영향이 크다. 그런데 막상 중국은 이미 오래 전에 부성원칙을 없앴다. 1980년 바뀐 혼인법은 자녀가 아버지 성을 따르거나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근 1자녀 정책을 폐지한 후로는 첫째는 아버지 성을, 둘째는 어머니 성을 따르기로 하는 것이 유행이라는 소문도 있다.
부성원칙 폐지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흔히 미국을 예로 든다. 미국은 결혼하면 처가 남편 성을 따른다며 우리는 아내의 성을 독립시켜주니깐 더 낫다고들 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가 여성의 독립을 위해 여성의 성을 그대로 두는 게 아니지 않나. 이 역시 ‘아버지로부터 받은 성(姓)은 바꾸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딸인 여성의 성을 그대로 두는 것이다. 맥락이 다르다.
미국에서 자녀 성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부모 양측의 의견을 따르도록 하고, 의견이 다를 때 가정법원에서 해결한다. 미국은 또 아버지, 어머니가 아닌 새로운 성을 써도 대부분 주에서 규제하지 않는다. 독일은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가 협의 후 1달 내로 정하도록 하고, 협의가 안 되면 법원이 개입해 지정하게 한다. 프랑스는 부, 모 혹은 부모 성을 중복해서 쓰는 것 중에 합의해서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의 부성원칙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불평등한 조항으로 고쳐야 한다고 보나.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은 가족성에 대해 부부가 동일한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우리법은 이와 충돌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4년 CEDAW를 비준해 이를 따를 의무가 있다. CEDAW위원회는 수차례 우리 정부에게 부성주의 원칙을 없애라고 요구했고, 올 2월 8차 권고를 통해서도 협약과 양립할 수 없다며 철회하라고 했다. 부성원칙을 따르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캄보디아, 미얀마 등 세계에서 몇나라 되지 않는다.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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