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조선시대 괴수 잡는 당찬 여성 각본 보자마자 승부욕 불타"

조선일보
  • 양승주 기자
    입력 2018.09.14 03:00

    [이혜리]

    '물괴'로 스크린 데뷔

    배우 이혜리
    이혜리는 또래 친구들과 달리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사진을 올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민망해서요(웃음). 매번 똑같은 얼굴을 왜 찍나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팬들이 제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서 요즘엔 의식적으로 찍어 올리려고 해요.” 그가 다시 까르르 웃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데뷔 이후 길게 쉬어본 적이 거의 없어요. 한 달에 하루 쉴까 말까? 그러다 '나를 위한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8개월 정도를 푹 쉬었어요. 원래 며칠만 놀아도 불안해서 '저 일할래요!'라고 외치던 저였는데, 오래 쉬어보니 웬걸, 너무 좋은 거 있죠?"

    최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이혜리(24)는 마치 톡 쏘는 사이다 같았다. "인터뷰 재밌게 써 달라는 의미로 아침 일찍 사 왔다"며 수줍게 마카롱 하나를 건네고, "기자님 타자 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신기하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중간중간 호탕한 웃음소리는 어색한 분위기를 '뻥'하고 뚫어버렸다. 그런 성격 덕분일까, 인기 걸 그룹 '걸스데이' 멤버이자 예능 '진짜 사나이',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등을 통해 다방면에서 성공을 거뒀다. 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물괴'(감독 허종호)로 스크린에도 데뷔했다. "영화 출연을 결심하게 된 건 데뷔 후에 처음으로 길게 가진 휴식 덕분이었어요. 저를 텅 비워내고 나니 오히려 더 열정을 갖고 이제껏 해보지 않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더라고요." 그가 다시 웃음을 뻥하고 터뜨렸다.

    도전은 나의 힘

    배우 이혜리
    이혜리가 출연한 영화 ‘물괴(위 사진)’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tvN

    ―첫 영화가 사극이자 크리처물(괴수 영화)이라 시도하기 어렵지 않았나요.

    "맞아요! 만약 쉴 새 없이 일하던 와중에 이 작품을 만났더라면 쉽게 시도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오랜 기간 푹 쉬고 나서 시나리오를 받아들었더니 마치 불이 확 붙는 느낌이 들었어요. 승부욕이라고나 할까요? 저도 익숙하고, 대중 역시 예상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였다면 하지 않았을 거예요."

    '물괴'에서 이혜리가 연기한 '명'은 아버지 '윤겸'과 삼촌 '성한'과 함께 산속에서 살아가다가, 한성에 정체불명의 괴물 '물괴'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백성을 구하기 위해 한성으로 떠난다. 명은 아버지의 만류에도 물괴 수색대에 홍일점으로 끼어 산속에서 익힌 활 솜씨와 의학 지식, 그리고 시체도 아무렇지 않게 살펴보는 겁 없는 성격으로 위기 상황을 헤쳐나간다. 이혜리는 영화 내내 검댕 칠한 얼굴로 씩씩하고 당찬 명을 그려낸다.

    ―'명'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분석했나요?

    "시대적 배경이나 남자 일색인 등장인물들을 볼 때 과연 나이도 어리고 여자인 명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저는 그럴 때 명이가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겁도 없고 용감하며, 어쩌면 여러분보다 훨씬 나은 사람일 수도 있어요'라고 외칠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한국 영화나 심지어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여자 캐릭터가 불필요한 사건을 만들거나 잡혀간다거나 하면서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영화와 달리, 명이가 무술과 의술에 능하고, 성격도 씩씩하고 당찬 캐릭터여서 도전하고 싶었어요."

    ―'도전'이란 말을 좋아하는 듯하네요.

    "네. 신기할 정도로 '도전'이란 단어를 많이 써요. '이번에 무엇에 도전했어요'나 '다음엔 어떤 일에 도전할 거예요' 등등. 다음 작품 역시 그저 주어지는 것보다는 도전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싶어요. 이제까지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엔 홍일점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여자 배우들과 여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사람들이 '세다'고 느끼는 이야기도 해보고 싶고요."

    연기는 어려운 숙제

    17세였던 2010년 걸 그룹 '걸스데이'에 합류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초반 몇 년은 무명에 가까운 기간을 보냈지만, 2013년 발표한 '여자 대통령'이 음악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1위를 한 이후 'Something' 'Darling' 등 히트곡을 잇달아 내놓으며 승승장구했다. 2014년엔 군 생활을 체험하는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 출연해 특유의 명랑한 웃음과 씩씩한 태도 덕에 큰 인기를 얻었다. 이듬해 여주인공 '덕선'으로 출연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2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배우로서도 입지를 다졌다.

    ―가수로 활동하며 칭찬받을 때와 배우로 칭찬받을 때 다른 점이 있을까요?

    "큰 차이점은 없어요. '연기는 혼자 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연기 역시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한 그룹이 똑같은 노래, 똑같은 안무를 하더라도 옷이 다르면 아예 다른 무대가 돼요. 마찬가지로 드라마도 똑같은 감독과 대본인데 조명만 다르게 써도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 되죠. 드라마도, 영화도 다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잘했다'는 칭찬은 저뿐 아니라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칭찬 들으면 기분은 좋죠. 앞으로의 저에 대한 기대도 생기고요."

    ―배우로서 가장 필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공감하는 능력이요. 사실 시나리오를 그냥 읽어내리면 캐릭터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어려워요. 명이의 경우도 윤겸이 친아버지도 아닌데 애틋한 감정을 느끼는 게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명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봤어요. 친아빠도 아닌데 벼슬을 버리고 나를 위해 산속에서 은둔 생활을 하는 윤겸의 모습을 떠올리니 친아빠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는 결론이 내려졌어요. 아직 부족하지만, 이런 것들이 가상의 인물에 공감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연기에 칭찬 못지않게 혹평도 많다. 그래서인지 연기에 대한 질문에 답할 땐 단어를 몇 번 바꿨고, 때때로 숨을 고르며 조심스러워했다.

    ―이번 작품을 끝낸 자신에게 칭찬 한마디 해 준다면?

    "하하, 글쎄요. 스스로 칭찬하는 건 너무 오글거려서…. 아직 영화에선 너무 신인이니까요. 그저 온 가족이 보는 추석 개봉작에 출연했다는 점, 그 정도만 자랑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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