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수상한 '달달 커플'의 반년 셋방살이

조선일보
  • 이기호 소설가
    입력 2018.09.14 03:00

    [삶의 한가운데] [누가 봐도 연애소설] 치킨런

    [누가 봐도 연애소설]  치킨런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자영업을 하는 부모 아래에서 자란 자식들은 대체로 빨리 자란다. 경기에 따라 날씨에 따라 매상에 따라, 그때그때 집안 분위기가 달라지니까, 눈치도 빤해지고 이런저런 생각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나는, 2년 전만 해도 학원을 여섯 군데나 다녔다. 영어와 수학과 합기도는 기본으로 깔고, 논술과 과학 실험, 한자까지 다녔다. 그땐 엄마와 아빠가 우리 집에서 차로 삼십 분 정도 떨어진 신도시에 막 감자탕집을 개업했을 때인데, 주변에 별다른 식당이 없어서였는지 장사가 제법 잘됐다. 장사를 마치고 돌아온 아빠는, 아직 초등학교 3학년생인 나에게 오만원짜리 지폐를 척척 내주곤 했다. 물론 다 좋았던 시절 이야기다. 지금 엄마 아빠의 가게 주변엔 24시간 감자탕집만 다섯 곳이다. 나는 올해 초에 논술과 과학 실험과 한자 학원을 끊었고, 두 달 전부턴 나머지 학원도 모두 그만두었다. 엄마는 '넌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학원이나 열심히 다녀' 했지만, 잠도 제대로 못 잔 부모가 식탁에 앉아서 푹푹 한숨만 내쉬고 있는데 어찌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초등학교 5학년이면 이제 만으로 열 살이 넘은 나이다. 라면도 혼자 끓여 먹을 수가 있고, 세탁기도 돌릴 수 있는 나이이다. 공무원 아빠를 둔 아이나, 교사인 아빠를 둔 아이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걔들은 인생이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처럼 저절로 흘러가는 줄로만 알고 있다.

    엄마 아빠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새벽 2시이다 보니, 매일 혼자 밥 먹고 혼자 잠들어야만 했다. 우리 집은 구도심에 있는, 지은 지 30년도 넘은 단독주택이다. 대문이 있고, 옥상에 장독대가 있는, 단층 슬라브 주택인데, 쓸데없이 방은 네 칸이나 된다. 그 방 중 하나는 따로 출입문이 나 있고, 작은 주방과 욕실도 딸려 있는데, 엄마는 늘 그곳에 세입자를 들였다. 하지만 그곳은 지금 비어 있다. 아무리 시세보다 싸게 내놓아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 같아도 신도시 원룸을 구하지 춥고 낡은 우리 집에 세를 들어오지는 않을 거 같다. 보증금도 없고, 월세가 15만원인데도, 아무도 방을 보러 오지 않는다.

    그 방에 살았던 마지막 세입자는 삼십 대 중반의 남자와 이십 대 초반의 여자였다. 그들은 세간 하나 없이, 큼지막한 여행 캐리어 하나만 달랑 끌고 이사를 들어왔다. 딱 봐도 문제 있구먼. 도망친 거지, 뭐. 엄마는 그들에게 방을 보여주곤 뒤돌아서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날 바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일 년 반 전의 일이다. 감자탕집 옆에 새로 부대찌개집이 개업했던 시기.

    남자와 여자는 이사 온 이후, 거의 외출하지 않고 방에만 머물렀는데, 한 달 정도 지난 뒤부턴 가끔 우리 집 거실로 들어와 나와 함께 TV를 보곤 했다. 우린 아무것도 없잖니, 얘. 여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거실 소파 내 왼편에 앉으면, 남자가 내 오른편에 앉으면서 원래 TV는 여럿이 같이 봐야 제맛이거든, 하고 말을 덧붙였다. 남자는 자신을 편하게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지만, 나는 그냥 아저씨라고 불렀다.

    남자는 자주 치킨을 시켰다. 우리 집 거실에서 TV를 볼 땐 거의 예외 없이 치킨을 시켰는데, 계산은 늘 카드로 했다. 메뉴는 항상 양념 반 프라이드 반. 여자는 정말이지 치킨을 잘 먹었다. 다리든 날개든 목 부위든, 여자 입으로 들어가면 살 한 점 남지 않고 새하얀 뼈만 톡 밖으로 튀어나왔다. 남자는 치킨을 거의 먹지 않고 그런 여자를 미소 지으며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왠지 치킨을 많이 먹으면 안 될 거 같아서 계속 퍽퍽한 가슴살만 오래오래 씹었다. 언젠가 남자가 치킨을 먹다가 컵에 콜라를 따르려 애쓴 적이 있었다. 손가락에 기름이 묻어 손바닥만으로 콜라병을 들고 뚜껑을 열려고 했는데, 그게 잘 되질 않았다. 그러자 여자가 남자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제 입에 넣어 빨아주었다. 아아, 정말 더러워 죽겠네. 저게 뭐 하는 짓일까…. 나는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남자와 여자는 계속 낄낄거리면서, 간지럽다고 몸부림을 쳤다. 그러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남자는 그 손으로 치킨을 들어 내게 건네기도 했다. 그날 나는 당연히 치킨을 먹지 않았다.

    그 남자와 여자는 그 방에서 반년 가까이 살았다. 그 사이 치킨을 오십 마리 넘게 시켜 먹었고, 함께 프로야구 시즌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나는 언젠가부터 그들이 우리 집 거실에 오는 게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집에 나 혼자 있지 않아서, 무섭지 않고 좋았다. 언제까지나 그들이 함께 지낼 거로 생각했지만, 그건 내 바람일 뿐이었다. 찬 바람이 불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가 먼저 그 방을 떠났다. 남자는 그 뒤로 두 달 가까이 혼자 살다가 이사를 나갔다. 여자가 왜 먼저 떠났는지,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남자가 대리운전을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였나, 퇴근하고 방으로 돌아와 보니 여자가 없었다고,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남자에게 전해 들은 게 전부였다. 남자는 몇 번인가, 누나가 혹시 무슨 말 한 건 없었니, 물어 왔지만, 나는 해줄 말이 없었다. 남자는 그 두 달 동안 거의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우리 집 거실로 TV를 보러 오지도 않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남자를 본 건, 남자가 마지막 월세를 건네려 거실로 찾아왔을 때였다. 그때 마침 나는 치킨을 먹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살 때 모아둔 쿠폰으로 내가 주문한 치킨이었다.

    "형도 좀 드세요."

    나는 남자에게 말했다. 눈이 퀭하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내 옆 앉아 치킨을 내려다보다가 조금씩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는데, 남자는 기름이 묻은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싼 채 계속 끅끅거리기만 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지난달인가, 나는 엄마와 아빠와 함께 치킨을 먹다가, 컵을 집으려다 말고 내 손가락을 엄마 입안으로 쑥 집어넣어 보았다. 그러자 엄마가 내 등짝을 세게 내리치면서 말했다.

    "더럽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간지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 등짝만 계속 화끈거리기만 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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